근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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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안산을 소재로 한 현대시. 안산시는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군자면, 화성군 반월면의 일부가 편입되면서 신도시로 조성되었다. 인근의 시흥시, 군포시, 안양시의 접경 지역이 겹쳐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에서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외부 유입 문인이 늘어나 안산을 소재로 한 시(詩)는 많지 않은 편이다. 그 중에서 이정태, 최세균, 이정소 등 세 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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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심훈이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샘골을 배경으로 하여 지은 소설. 「상록수」는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소설현상공모에 당선된 심훈(沈熏)[1901~1936]의 장편소설로, 농촌계몽운동을 시대적 배경으로 깔고 있다. 농촌계몽운동은 일제의 식민지 수탈에 맞서 1920년대 중반부터 적극적으로 전개되어 왔는데, 1931년 동아일보사가 창간 1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브...
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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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지역에 기반을 두었던 문인이 쓴, 혹은 안산을 배경으로 창작한 문학작품. 고전문학은 세분화된 문학 분류보다 시(詩)·서(書)·화(畵) 등을 두루 섭렵했던 학자들의 종합적 예술 활동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활동을 했던 학자들로는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1424~1483]과 선조 말에서부터 광해군 및 인조 때까지 살았던 계곡(谿谷) 장유(張維)[158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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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지역을 소재로 하여 조선시대 문인·학자들이 지은 시(詩). 옛 사람들은 안산의 아름다운 형승(形勝)을 “바다 위에 떠 있는 한 떨기 갓 피어난 연꽃”에 비유했다. 서쪽 바닷가의 해빈(海濱)에 맞닿아 마치 쫙 펼쳐 놓은 부채꼴 속의 한 송이 연꽃 같은 모습이라는 얘기다. 이런 자연적 경관을 배경으로, 특히 조선시대에는 수많은 학자와 시인들이 안산에 기거하며 주옥같은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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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백련이 경기도 안산의 광덕산 별장에서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 「광덕산장우음(廣德山庄偶吟)」은 초가(草家) 김백련(金百鍊)[1707~1795]이 안산 광덕산(廣德山)[209m]의 별장에서 지은 칠언절구로서, 그의 필사본 시집 『초가선생유고초(草家先生遺稿抄)』에 실려 있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 있는 광덕산은 고을 안쪽의 진산으로, 이곳은 예부터 김류 집안의 산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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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흔이 경기도 안산의 안원사를 찾아가서 지은 오언율시의 한시. 「다시 안원사에서 놀며」는 삼당재(三當齋) 강흔(姜俒)[1739~1775]이 안원사를 다시 찾아가 보고 느낀 감회를 적은 한시이다. 빈(頻)·인(人)·친(親)·진(陳)을 차운한 오언율시로 그의 문집인 『삼당재고(三當齋稿)』 춘(春)권에 실려 있다. 강흔은 강세황의 둘째 아들로서 25세 때인 1763년(영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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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희영이 경기도 안산의 원당사에 올라 지은 오언절구 한시. 원당사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 수리산에 있던 절로서 안산 사람들의 기도처로 유명한 곳이었으나 현재는 폐사되었다. 안산의 문인들이 자주 찾으며, 이곳을 소재로 지은 시도 여러 편 있는데, 「다시 원당사에 올라」도 그 중 하나이다. 강희영의 문집 『양산시고(諒山詩稿)』에 실려 있다. 양산(諒山) 강희영(姜羲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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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년 전후 이명한이 경기도 안산의 대부도 객관(客館) 풍경을 노래한 칠언율시의 한시. 조선시대 안산의 대부도 객관은 서해팔경(西海八景) 중 하나로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석양 무렵 썰물이 지나가면 먼 수평선의 낙조와 함께 갈매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드넓은 백사장이 마치 신선들이 사는 삼신산(三神山)을 방불케 하였다고 전한다. 「대부도 객관」은 이런 대부도 객관을 노래한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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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허목이 경기도 안산의 청문당에서 매화를 감상하고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 「상초당매」는 허목(許穆)[1595~1682]이 지기인 유석(柳碩)[1595~1655]을 찾아가서, 진주유씨 대종가 재실인 청문당(淸聞堂)의 매화를 보고 그 느낌을 표현한 시이다. 청문당의 자랑은 ‘매화와 서책들’이란 말대로 당시 유석은 분매를 잘 길러 허목 등 친지들에게 종종 선물하여 매화음(梅花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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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0년 신후재가 경기도 안산의 석곡역을 다녀온 감흥을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1690년 2월 신후재(申厚載)[1636~1699]는 평소에 깊은 우의를 나누던 유명천을 찾아 현재의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던 진주유씨 대종가 재실인 청문당(淸聞堂)을 방문했던 것 같다. 유명천의 『퇴당선생시집(退堂先生詩集)』권1에 원운(元韻)으로 실려 있고, ‘경오년에 사원에게 준다[寄士元庚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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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준흠이 경기도 안산 지역에 있던 성호 이익의 옛 집을 지나며 지은 한시. 강준흠(姜浚欽)[1768~?]이 태어난 곳은 충청도 서천(舒川)에 있는 외가의 장원(庄園)이었으나, 성장한 곳은 시흥의 난곡(蘭谷)과 안산이었다. 이익(李瀷) 또한 평안북도 벽동군(碧潼郡)에서 태어났으나 안산 지역에서 주로 생활하였다. 강준흠은 안산 15학사 중 하나로 안산 지역과 관련한 많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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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경기도 안산 지역에 묵으면서 지은 시. 1797년(정조 21) 8월 16일, 수원의 현륭원(顯隆園)으로 가는 도중 안산에 묵게 된 정조(正祖)[1752~1800]가 안산군민들의 수고를 위로하기 위해 지은 시이다. 『홍재전서(弘齋全書)』권7에 실려 있으며, 원래 제목은 「밤에 안산의 아헌에 임어하다」이다. 압운(押韻)은 연(蓮)자이고, 전(錢)·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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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응조가 경기도 안산 지방관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열린 수석연(壽席宴)을 기념하여 지은 한시. 김응조(金應祖)[1587~1667]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효징(孝徵), 호는 학사(鶴沙) 또는 아헌(啞軒)이다. 1623년 인조가 반정으로 즉위하자 문과에 응시하여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인조와 효종·현종 3대를 섬겼으며, 벼슬은 공조참의에 그쳤으나 문장과 덕(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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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정이오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있는 객관에 대한 느낌을 적은 칠언절구의 한시. 정이오(鄭以吾)[1347~1434]의 본관은 진주, 자는 수가(粹可), 호는 교은(郊隱) 또는 우곡(愚谷)이다.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뛰어난 시인으로 1374년(공민왕 23) 문과에 급제한 후, 조선조에서 숭정대부의 품계에까지 올랐다. 경학(經學)에 대한 연구가 깊어 1398년 하륜·조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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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작이 안산객사를 둘러보고 난 감회를 읊은 오언율시의 한시. 정작(鄭碏)[1533~1603]의 본관은 온양이다. 이조좌랑 등을 역임하였고, 도교에 심취해 친구이자 후배인 한준겸(韓浚謙)[1557~1627]에게 불로장생의 단련(鍛鍊)을 전수하고자 했던 일이 조야(朝野)에 큰 말썽으로 비화된 일화도 있다. 형인 정염과 함께 우리나라 도교의 한 맥을 잇고 있다. 천재 시인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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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신좌모가 경기도 안산 선영에 성묘하러 가면서 지은 한시. 담인(澹人) 신좌모(申佐模)[1799~1877]가 안산 선영에 성묘하러 가는 도중에 쓴 시로 노량진-안산-원주로 여행하며 지은 기행시인 「동협기행(東峽紀行)」 69수 중 한 편이다. 신좌모의 문집 『담인집(澹人集)』권3에는 「산초의 대조루 운을 써서 안산군수 정도화에게 주는 시(用汕樵對潮樓韻呈蓮城使君鄭道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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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홍성민이 경기도 안산 관아를 방문하고 그 감회를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홍성민(洪聖民)[1536~1594]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시가(時可) 호는 졸옹(拙翁)이다. 1564년(명종 19) 문과에 급제한 후 정자(正字)와 교리(校理) 등 청현직을 지낸 후, 1575년(선조 8) 호조참판 재직시 사은사로 명나라에 건너가 왕실의 잘못된 계행(系行)을 바로잡는 종계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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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활동했던 성몽량이 지은 한시. 소헌(嘯軒) 성몽량(成夢良)[1718~1795]이 안산포구 밤낚시의 풍경을 그린 작품으로, 『대동시선(大東詩選)』권6에 실려 있다. 망(茫)·장(長), 노(㺜)·사(斜)를 자운(字韻)하여 지은 칠언절구 2수이다. 파조귀래선유상(罷釣歸來船有霜)[낚싯대 거두고 돌아오니 뱃머리에는 서리가 하얀데] 야심로저월창망(夜深蘆渚月蒼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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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오광운이 경기도 안산어소에 사옹원봉사로 부임하는 동생을 보내며 지은 한시. 약산(藥山) 오광운(吳光運)[1689~1745]은 전 안산군수 이병연(李秉淵)과 함께 남인시단(南人詩壇)의 맥을 이어 갔던 시인이자 학자이다. 「안산어소-이월 들자 어장의 물고기들 점차 살이 오르고」는 오광운의 문집인 『약산만고(藥山漫稿)』권4에 실려 있는 작품으로, 원래 제목은 「아우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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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은거하던 강희영이 지은 한시. 강희영(姜羲永)[1796~1867]은 강준흠(姜浚欽)[1768~?]의 둘째 아들로, 1843년(헌종 9) 사마시에 급제하여 의영고직장(義盈庫直長)과 경산현령을 끝으로 벼슬에서 물러나 안산 지역에 내려와서 살았다. 안산은 선조인 강희안(姜希顔)과 강희맹(姜希孟)이 생존해 있을 때부터 별장이 있었던 곳이다. 더욱이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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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응조가 경기도 안산 지방관의 수석연을 기념하여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 김응조(金應祖)[1587~1667]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효징(孝徵), 호는 학사(鶴沙) 또는 아헌(啞軒)이다. 1623년 인조가 반정으로 즉위하자 문과에 응시하여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인조와 효종·현종 3대를 섬겼으며 벼슬은 공조참의에 그쳤으나 문장과 덕(德)이 훌륭한 영남 남인(南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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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9년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은거한 김백련이 지은 한시. 초가(草家) 김백련(金百鍊)[1707~1795]은 사마시에 급제한 후 과천현감과 교하군수를 지낸 후, 세상과 뜻이 맞지 않아 일찍 은퇴하고 안산에 돌아와 평생을 한사(寒士)처럼 살면서 시주(詩酒)만을 즐겼다고 한다. 「안산추일(安山秋日)」은 김백련의 필사본 시집 『초가선생유고초(草家先生遺稿抄)』에 실려 있는 오언절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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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세황이 경기도 안산에 있는 안원사에서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 강세황은 시와 글씨, 그림에 뛰어났지만 최성대(崔成大)는 그를 평하기를 글씨보다 시가 훨씬 낫다고 하였으며, 이광려(李匡呂)[1720~1783]는 그를 ‘시인의 정수’라고 극찬하고, 그의 시상(詩想)과 시어(詩語)는 매우 담백하고 고상하며, 속된 말을 절대 쓰지 않았다고 하였다. 「안원사에서 자고 대설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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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안산 출신의 성혜영이 지은 오언절구의 한시. 연성(蓮城)이란 안산의 별칭이다. 「연성계상(蓮城溪上)」을 지은 남파(南坡) 성혜영(成蕙永)[1848~1911]은 ‘안산 15학사’의 의발(衣鉢)을 전수 받았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차세대 인사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성혜영과 관련하여 알려진 것이라고는, 그가 오랫동안 방랑을 하면서 시를 썼다는 기록 이외에 행적을 밝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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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강세황이 경기도 안산의 뛰어난 절경 8곳을 노래한 한시. 조선 후기의 가장 뛰어난 문인화가 중 한 사람인 표암(豹庵) 강세황(姜世晃)[1713~1791]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윈 뒤에 궁색한 서울 살림을 접고 32세 때에 처가가 있는 안산(安山)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그곳에서 61세라는 늦은 나이에 벼슬길에 오를 때까지 궁핍 속에서 학문과 서화에 전념하였는데,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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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희성이 경기도 안산 원당사 계곡에 띠집을 짓고 살면서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 김희성(金喜誠)[1722~1791]의 본관은 전주, 자는 중익(仲益), 호는 불염자(不染子)·불염재(不染齋)이다. 본명은 김희겸(金喜謙)이다. 전주김씨는 주로 함경도 일대에 집단으로 거주한 씨족인데, 조선 후기에 와서 어떤 경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파가 서울로 이주하여 수많은 여항시인을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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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기도 안산 출신의 김진표가 지은 한시. 김진표(金震標)[1614~1671]의 자호(自號)는 동애(東厓), 오애(梧厓), 동리(東籬) 등으로 사용되었다. 김진호의 증조부 김여물(金汝岉)[1548~1592]은 임진왜란 당시 충주의 탄금대 전투에서 전사하였으며, 조부는 인조반정의 1등 원훈(元勳)으로 대제학과 영의정을 지낸 북저(北渚) 김류이다. 아버지 김경징(金慶徵)[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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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희영이 경기도 안산의 원당사에 올라 지은 오언절구의 한시. 「원당사에 올라」는 양산(諒山) 강희영(姜羲永)[1796~1867]의 문집 『양산시고(諒山詩稿)』에 실려 있는 작품이다. 강희영의 아버지 강준흠은 물론이고 아들 강우형 모두 시명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춘산근황혼(春山近黃昏)[봄 산에 황혼이 깃들고] 고사종성만(古寺鐘聲晩)[옛 절 저녁 종소리] 창해귀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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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장유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은거하면서 감흥을 노래한 한시. 장유(張維)[1587~1638]는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의 무옥사건(誣獄事件)에 연루되어 파직당하자, 그로부터 12년간 안산의 군자면 장곡리 매곡 해변의 본향(本鄕)에 내려와 살면서 노모 봉양과 학문 탐구에 전념하였다. 당시 농사의 어려움과 그에 따른 농민들의 애환, 그리고 그들의 참담한 고통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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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활동한 연성음사에서 펴낸 『연성음사제1회집』에 실려 있는 김창수의 한시. 1920년대 후반 연성음사(蓮城吟社)라는 문인 단체에서 전국 규모의 백일장을 개최했는데, 시제(詩題)는 안산을 상징하는 꽃인 중국 항주산(杭州産) 연꽃인 ‘전당홍(錢塘紅)’이었고 압운(押韻)은 ‘당(塘)’자였다. 주최 측은 당시 입선한 작품들을 모아, 『연성음사제일회집(蓮城吟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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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거정이 경기도 안산 지역을 노래한 칠언율시의 한시.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 또는 정정정(亭亭亭) 등이다. 1444년(세종 26) 문과에 급제한 후 1467년 형조판서로서 예문관대제학과 성균관지사를 겸하여 국가의 문형(文衡)을 관장하였으며, 나라에 중히 쓰인 전책(典冊)과 사명(詞命)이 모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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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거정이 경기도 안산 지역을 다녀간 뒤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 또는 정정정(亭亭亭) 등이다. 1444년(세종 26) 문과에 급제한 후 1467년 형조판서로서 예문관대제학과 성균관지사를 겸하여 국가의 문형(文衡)을 관장하였으며, 나라에 중히 쓰인 전책(典冊)과 사명(詞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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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유원성이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의 매미골로 낙향한 이후 지은 한시. 유원성(柳遠聲)[1851~1945]은 근대 인물로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주명(周鳴)이며, 유명천(柳命天)의 6세손이다. 1874년(고종 11) 사마시에 급제하여 평리원검사와 개천군수를 지냈다. 평리원검사 시절 이준(李儁)[1858~1907] 열사와 함태영(咸台永) 전 부통령과 함께 활동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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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전후 유원성이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의 매미골로 낙향한 이후 지은 한시. 유원성(柳遠聲)[1851~1945]은 근대 인물로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주명(周鳴)이며, 유명천(柳命天)의 6세손이다. 1874년(고종 11) 사마시에 급제하여 평리원검사와 개천군수를 지냈다. 평리원검사 시절 이준(李儁)[1858~1907] 열사와 함태영(咸台永) 전 부통령과 함께 활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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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병연이 안산현감으로 재직 중 바닷가 어민들의 모습을 묘사한 한시. 이병연(李秉淵)[1671~1751]은 조선 후기의 시인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일원(一源), 호는 사천 또는 백악하(白嶽下)이다. 김창흡(金昌翕)의 문인이며, 벼슬은 음보로 부사(府使)에 이르렀다. 영조시대 최고의 시인으로 일컬어졌는데, 문인 김익겸(金益謙)이 그의 시초(詩抄) 한 권을 가지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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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광려가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은거하고 있던 강세황의 청아한 삶을 노래한 오언율시의 한시. 이광려(李匡呂)[1720~1783]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재 (聖載), 호는 월암(月巖) 또는 칠탄(七灘)이다. 문장이 뛰어났으며, 학행이 높아 천거를 받아서 참봉이 되었다. 학식과 덕행이 높고 문장이 뛰어나 당시 사림의 제1인자였다고 한다. 강세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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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장유가 경기도 안산의 해산헌에서 바라본 8가지 풍경을 노래한 한시. 장유(張維)[1587~1638]는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의 무옥사건(誣獄事件)에 연루되어 파직당하자, 그로부터 12년간 안산의 군자면 장곡리 매곡[鷹谷] 해변의 본향(本鄕)에 내려와 살면서 노모 봉양과 학문 탐구에 전념한 바 있다. 당시 농사의 어려움과 그에 따른 농민들의 애환,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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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장유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은거하던 당시 거처하던 해장정사에 대해 쓴 기문. 장유(張維)[1587~1638]는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의 무옥사건(誣獄事件)에 연루되어 파직당하자, 그로부터 12년간 장곡리의 매곡[鷹谷] 해변 본향(本鄕)에 내려와 살면서 노모 봉양과 학문 탐구에 전념한 바 있다. 이때 그가 안산에서 거처하던 곳이 해장정사(海莊精舍)로,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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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장유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은거하면서 농민의 생활 가운데 하나인 호미씻이를 노래한 한시. 장유(張維)[1587~1638]는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의 무옥사건(誣獄事件)에 연루되어 파직당하자, 그로부터 12년간 안산의 군자면 장곡리 매곡[鷹谷] 해변의 본향(本鄕)에 내려와 살면서 노모 봉양과 학문 탐구에 전념한 바 있다. 당시 농사의 어려움과 그에 따른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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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익이 경기도 안산 화포에 은거하며 지은 17수의 한시. 화포(花浦)는 옛날의 성곶(聲串), 곧 오늘날의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이다. 칠언절구인 「화포잡영17수(花浦雜詠十七首)」는 문예미에서도 뛰어난 작품으로 『성호선생전집(星湖先生全集)』권4에 실려 있다. - 제1수- 야우번분옥사림(夜雨翻盆沃四林)[밤비 억수로 내려 온 숲을 살찌우고] 조래제색희난금(朝來霽色喜難禁)[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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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장유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은거하면서 목격한 농민의 수확하는 장면을 노래한 오언율시의 한시. 장유(張維)[1587~1638]는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의 무옥사건(誣獄事件)에 연루되어 파직당하자, 그로부터 12년간 안산의 군자면 장곡리 매곡[鷹谷] 해변의 본향(本鄕)에 내려와 살면서 노모 봉양과 학문 탐구에 전념한 바 있다. 당시 농사의 어려움과 그에 따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