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16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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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Homissit-yi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준호 |
성격 | 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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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장유 |
창작연도/발표연도 | 조선 후기 |
[정의]
조선 후기 장유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은거하면서 농민의 생활 가운데 하나인 호미씻이를 노래한 한시.
[개설]
장유(張維)[1587~1638]는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의 무옥사건(誣獄事件)에 연루되어 파직당하자, 그로부터 12년간 안산의 군자면 장곡리 매곡[鷹谷] 해변의 본향(本鄕)에 내려와 살면서 노모 봉양과 학문 탐구에 전념한 바 있다. 당시 농사의 어려움과 그에 따른 농민들의 애환, 그리고 그들의 참담한 고통 등을 적은 1백 편의 시를 지었는데, 「호미씻이」는 그 가운데 하나이다. 장유의 표현에 따르면, 호미씻이는 농가에서 김매는 일을 다 끝내고 나서 남녀노소가 한데 모여 먹고 마시는 것을 지칭한다고 한다.
[내용]
전옹백죽립(田翁白竹笠)[남정네는 하얀 대오리갓 머리에 쓰고]
전부청포군(田婦靑布裙)[여인네는 푸른 무명치마]
팽포작과천하어(烹匏斫瓜薦鰕魚)[삶은 박에 오이 썰어 생새우도 듬뿍 얹고]
노와분성서주혼(老瓦盆盛黍酒渾)[이빠진 옹배기엔 막걸리가 찰랑찰랑]
청사원두상엽음(靑莎原頭桑葉陰)[잔디 덮인 언덕의 뽕나무 그늘 아래]
좌래사좌농담훤(坐來四座農談喧)[앉자마자 사방에서 꽃피우는 농사 얘기]
동가운교서가만(東家耘較西家晩)[저쪽은 이쪽보다 김매기가 늦었다느니]
저전화비고전번(低田禾比高田繁)[아랫배미가 윗배미보다 더 잘 됐다느니]
소년행주장노취(少年行酒長老醉)[잔 돌리는 소년들에 노인들은 거나해져]
단수기무하준준(短袖起舞何蹲蹲)[짧은 옷소매 일어나서 춤도 절로 덩실덩실]
일년작고일일환(一年作苦一日歡)[1년 내내 고된 농사 이 날 하루 즐거움]
전가차석백우관(田家此夕百憂寬)[농촌 들녘 모든 근심 이 날 만은 잊고 사네]
군부견(君不見)[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거년이도색조시(去年吏到索租時)[지난해 아전배들 들이닥쳐 세금 독촉 심하자]
옹모광분삼일기(翁姥狂奔三日飢)[영감 할미 사흘 굶고 바쁘게 마련했지]
전가락사기이득(田家樂事豈易得)[농사꾼 즐거운 일 어찌 쉽게 얻으리]
근군취포무거귀(勤君醉飽無遽歸)[가지 말고 천천히 실컷 먹고 취하시게]
[의의와 평가]
장유는 「호미씻이」에서 순박한 농민들의 옷차림새와 음식, 음주문화, 그리고 젊은이들의 노인 공경 등 향촌 사회의 예절과 오락을 그리고 있다. 조정의 관인(官人)이었던 장유의 눈에 비친 농민들의 삶은 하나의 감동으로 다가왔던 듯싶다. 한편 과도한 세금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참상을 별항(別行)으로까지 처리해 가며 부각시키고 있다.
장유는 훗날 다시 벼슬을 할 때, 지방관으로 떠나는 이들에게 농민들의 어려움을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하면서 착한 정치를 부탁하는 많은 서(序)와 시를 써주었는데, 이는 안산 지역에서 은거하던 시절 직접 목격한 이 같은 사실들과 관련이 깊다 하겠다. 조선 후기 안산 지역의 삶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