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1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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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玉溪幽居 |
영어의미역 | Living At The Bank of A Stream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계형 |
[정의]
조선 후기 김희성이 경기도 안산 원당사 계곡에 띠집을 짓고 살면서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
[개설]
김희성(金喜誠)[1722~1791]의 본관은 전주, 자는 중익(仲益), 호는 불염자(不染子)·불염재(不染齋)이다. 본명은 김희겸(金喜謙)이다. 전주김씨는 주로 함경도 일대에 집단으로 거주한 씨족인데, 조선 후기에 와서 어떤 경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파가 서울로 이주하여 수많은 여항시인을 배출하였다. 김희성의 일계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의 아버지 김상린(金尙潾), 김상홍(金尙泓), 김석귀(金錫龜), 김시완(金時完) 등의 여항시인이 족출한다.
궁중의 도화서(圖畵署) 화원 출신인 김희성은 전신(傳神) 초상에 장기가 있었는데, 영조 일대의 어용화가로 활약하여 그 공으로 벼슬이 사천현감에 이르렀다. 당시 예원(藝苑)의 영수였던 강세황(姜世晃)도 자신의 화첩에서 김희성의 화재(畵才)를 높이 평가했다. 「옥계유거(玉溪幽居)」는 여항시인 천수경(千壽慶)[1758~1818]이 편찬한 『풍요속선(風謠續選)』의 맨 앞에 실려 있다. ‘옥계’는 수리산 원당사 계곡을 이름한 것이다.
[내용]
청산투노복유거(靑山投老卜幽居)[청산 깊은 곳, 늙은 몸 의탁코자 터전을 마련하고]
수석중간일초려(水石中間一草廬)[물과 바위 사이 초가삼간 지으려네]
적막시문인부도(寂寞柴門人不到)[적막한 사립문, 찾는 이 없어도]
산도화락오면여(山桃花落午眠餘)[산복숭화꽃 피고 지는 한낮, 낮잠도 오히려 여유롭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