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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국 묘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508
한자 金炳國墓碣
영어의미역 The Memorial Stone for Gim Byeongguk and His Wive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조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금석문
건립시기/일시 1906년연표보기
관련인물 김병국|김용진
재질 석재
높이 139㎝
너비 52㎝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아산시 권곡동 403-1[충무로 123]

[정의]

조선 후기 경기도 안산 출신의 문신 김병국과 부인들의 묘갈.

[개설]

김병국[1825~1905]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경용(景用), 호는 영어(穎漁)이다. 이조판서를 역임한 김수근(金洙根)의 아들이다. 1805년(철종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한 후 대교(待敎)를 비롯해 대사성·예조판서·병조판서·호조판서 등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 당시 고종의 자문에 사태를 보아서 강구하자는 중도적인 입장이었으나 인천 개항에는 반대하였다.

[내용]

1906년(광무 10) 4월에 세운 묘갈의 비문은 김병국이 생전에 지은 묘표에 그가 죽은 뒤에 양손자 김용진(金容鎭)이 부기한 묘지로 되어 있다. 김병국 묘갈은 그의 묘와 함께 안산시 상록구 일동에 있었다. 1976년 반월신도시 건설계획에 포함되어 이장이 불가피하게 되자 후손들은 지상 유물 일체와 발굴되는 매장 유물 일체를 온양민속박물관에 양도, 전시한다는 조건으로 묘역 일대를 발굴하고 유골은 화장하였다.

형태는 농대(壟臺) 위에 오석으로 된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팔작지붕 형태의 옥개석이었다. 석재로 높이는 139㎝, 너비는 52㎝이다. 김병국 묘갈은 영의정 김병국과 그의 첫째 부인 풍천임씨(豊川任氏), 셋째 부인 파평윤씨(坡平尹氏) 등 4위에 대한 묘갈이다. 음기(陰記)의 전반부는 김병국이 생전에 자찬(自撰)한 것이고, 후반부는 그의 양손자 김용진이 찬한 것이다. 2009년 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권곡동 온양민속박물관 야외전시장에서 전시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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