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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547
한자 金洙根
영어음역 Gim Sugeun
이칭/별칭 회부,계산초로,정문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진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 지도보기
성별
생년 1798년연표보기
몰년 1854년연표보기
본관 안동
대표관직 형조판서

[정의]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회부(晦夫), 호는 계산초로(溪山樵老). 증조부는 김원행(金元行), 할아버지는 김이직(金履直)이고, 아버지는 목사(牧使) 김인순(金麟淳)이며, 어머니는 신일식(申日式)의 딸이다. 당대 세도가의 출신으로서 동생 김문근(金汶根)철종의 장인으로 영은부원군(永恩府院君)에 봉하여졌고, 두 아들 김병학(金炳學)·김병국(金炳國)은 모두 정승에 올랐다.

[활동사항]

김수근은 1798년(정조 22) 경기 안산 성곶의 구룡골[지금의 안산시 상록구 일동]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는 집에서 학문을 익히다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812년 가족을 거느리고 미강(渼江)의 옛 집으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일가 사람에게 수학하여 영향을 많이 받았다.

형인 김준근(金浚根)이 세상을 떠나자 미강에서 철수하여 서울 집에 돌아왔다. 1828년(순조 28) 진사시에 합격하고 온릉참봉(溫陵參奉)을 거쳐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내던 중 1833년 충량과(忠良科)에 수석하고, 이듬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35년(헌종 1) 규장각대교(奎章閣待敎)가 되고, 이어 부수찬·부교리·장령·응교·사복시정·사간 등의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837년(헌종 3) 병조참지가 되었다가, 동부승지·대사성에 오른 뒤 이듬해 안동부사, 1839년에 승지가 되었다. 이어 1840년 이조참의·예조참의·첨지중추부사·돈녕부도정을 지내고, 양주목사로 나아갔다가 1845년 승지·부총관·승문원제조·예조참판·공조참판·병조참판 등을 두루 지냈다. 1847년 충청도관찰사, 1850년(철종 1) 이조참판·공조판서, 이듬해 우참찬·대사헌, 1852년 이조판서·홍문관대제학·선혜청당상, 1853년 병조판서, 이듬해 형조판서·한성부판윤 등을 지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삼연선생연보(三淵先生年譜)』가 있다.

[묘소]

세상을 떠난 이듬해 광주 외곡면 포우리에 안장되었다가 1861년에 안산 성곶의 구룡골로 이장되었는데, 신도시 개발로 인해 1979년 온양민속박물관에 의해 발굴 화장되었다. 묘지의 지문은 그의 종질(從姪) 김병기(金炳冀)가 찬하였다. 증직비문(贈職碑文)은 1861년에 세웠는데, 비문은 영은부원군 김문근이 찬하고 글씨는 홍문관부제학 김병필(金炳弼)이 썼다. 현재 비각과 함께 온양민속박물관 야외에 이전되었다.

[상훈과 추모]

철종은 특별히 정문(正文)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철종 묘정(廟廷)에 배향되고 거제의 반곡서원(盤谷書院)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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