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A020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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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설 |
[80리나 흘러가는 초평저수지]
구산동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초평저수지가 생기기 전에는 농다리 길이 증평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큰 길이었단다. 또한 신중희 할아버지는, 저수지 공사는 일제강점기에 시작했으나 완공되지 못하였고, 해방 후에도 계속 공사를 했지만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중단됐다가 3년 후에 완공이 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그게 왜정 때 시작하다가 마무리를 못 졌어, 그러고 해방이 됐어, 그러고 또 6·25전쟁이 났자너. 시작은 일본 사람이 한겨. 그래서 일본 사람이 했다가 해방이 되니께 하다 중단되고 말았지. 그러다가 또 뭐여, 한국 사람이 또 그걸 하다가 또 6·25전쟁이 나서 중단됐었지. 6·25전쟁이 나고 2~3년 있다가 한겨.”
할아버지는 당시의 상황을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 물이 작아 가지고 600~700m 더 내려와서 물을 막았지, 애초에는 이 위에 있던겨. 이 위에. 이 위에 바로 농다리 건너가서 고개 넘어가면 저 좌측으로다가 반 그냥 있어. 그거 그냥 있어. 물이 작아서 새로 이 아래로다가 옮겼지. 그 전에 전부 굴테뜰이었는데, 그거 밭이 엄청 컸어, 지금은 밭이 없어 굴테 사람이. 그리고 조금 있는 거 중부고속도로 때문에 허허허, 나도 거기 밭 한 2천 평[6,611.57㎡] 있었어, 근데 다 물에 들어갔지.”
물의 양이 부족해서 현재의 자리에 다시 댐을 만들었는데, 원래 그 곳은 밭이었다고 한다. 신중희 할아버지의 밭 6,611.57㎡도 초평저수지 자리로 들어갔단다. 또한 초평저수지 물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오창에서부터 조치원 위 오성뜰까지 80리를 내려간다는 말도 덧붙였다.
“강물을 빼면 조치원까지 가는겨. 오창서부터 조치원 위에 오성뜰까지 가는겨. 이 물이 80리 내려간다는겨. 엄청 오래 가는겨.”
진천군청 자료에 의하면, 초평저수지는 1942년에 기공하여 1958년 한·미 협조로 완공되었는데 용수량이 부족했다. 이에 약 40억 원의 공사비를 들여 1982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종전의 댐보다 2㎞ 하류에 다시 댐을 축조하여 1986년에 준공했다고 나와 있다.
[자연이 선사해 주는 진정한 휴식 공간]
피서대 벌판이 초평저수지로 들어가면서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점은 아쉬웠으나, 현재 피서대 주변은 관광객들이 편하게 쉬고 즐길 수 있도록 정리가 잘되어 있었다. 초평저수지 물가는 수변데크라고 하여 초평저수지의 풍경을 감상하고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또한 가족 단위로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있어 관광객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농다리 주변과 초평저수지에도 낚시와 문화재 답사를 함께 즐기는 관광객이 많이 늘고 있다고 한다.
미호천 변 언덕 위에는 농암정이란 정자가 있는데, 농암정에 올라서면 초평저수지와 농다리의 풍경 모두를 즐길 수 있어 마치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현재 진천군은 농암정에 초평저수지와 연관하여 폭포수를 만드는 공사를 하고 있는데, 폭포수가 완성되면 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