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A02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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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설 |
구곡리 농다리 건너에는 용의 허리같이 생긴 고개가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용고개 또는 살고개라 부르고 있었다. 용고개[살고개]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 보기 위해 내구마을에 살고 있는 임기용 할아버지 댁을 방문하였다. 집에서 왕골을 이용해 수공예품을 만들고 계시던 임기용 할아버지가 우리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마을의 지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용고개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자, 할아버지가 하던 일을 잠시 멈추더니 용고개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반색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농다리 건너 고개 넘어 넓은 벌판에 큰 부촌이 있었는데, 어느 날 한 부자가 시주를 받으러 온 중을 내쫓았다고 한다. 이를 괘씸히 여긴 중이 앞산을 깎아 길을 내면 더 큰 부자마을이 된다고 거짓으로 말했는데, 그대로 믿고 따라 하니 용의 허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는 내용이었다. 그 후 부촌이었던 마을은 망하여 없어졌다는 용고개와 피서대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다.
[중에게 거름을 주어 벌 받은 부자 이야기]
피서대에 관한 이야기 중 마을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야기는, 부자가 살고 있는 집에 중이 시주를 얻으러 오자 거름을 주어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피서대에 관한 전설에 대해 묻자 걸걸한 입담을 자랑하는 임준호 할아버지와 임기용 할아버지가 중에게 거름을 주어 벌 받은 부자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옛날에 농다리 건너 그쪽에 아주 굉장한 부자가 살었댜. 부자가 살았는데, 중이 가서 목탁을 탁탁 두드리면서 동냥을 달라고 하니께 주인이 하는 소리가 에잇, 오냥[거름]이나 두 사발 줘라 한겨. 부자가 오냥을 치고 있었거든. 그러니께 하인한테 오냥이나 퍼서 줘라 한겨. 오냥을 쳐서 주는데 중이 그걸 받아 가지고 갔댜. 그리고 다음에 와서 중이 이 부락에는 길을 이리로 내면 좋다 더 부자가 된다고 한겨. 그러니께 그 부자가 지금 고개 농다리 넘어 산을 판겨. 산을 끊은겨. 중이 하는 소리가 그렇게 하면 좋다고 해서 용 허리를 찍었다는겨. 허리를 찍었는데 그 피가 나와서 피서대로다 내려갔다는겨. 그래서 피서대가 된겨. 그래서 부자가 망하더라는겨.”
[피서대 벌판에서 나온 기왓장]
느티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던 임준호 할아버지를 만나 피서대 이야기를 물어 보았다. 할아버지 역시 피서대 전설을 이야기해 주면서, 피서대 벌판에서 주춧돌과 기왓장, 돈이 발견되어 당시 마을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 준다는 말도 전해 주었다.
“옛날에 그 부자 동네였었댜. 우리 임 서방네가 거기 살았었어, 이 일꾼 놈이 오양아치들이야. 그 중이 목탁을 두드리고 말이여. 동냥 좀 달라고 하니까 그 일꾼이 동냥은 안 주고 쇠똥을 말이여, 그러니께 중놈도 그걸 보고 못하게 해야 됐는데 그냥 놔뒀단 말이여. 그러니께 에이 이놈덜 벌을 내려야겠다고. 그 전에는 지름뱅이골로 댕겼댜. 살고개가 없구. 그런데 이 요 밑에 이리로다가 길을 내면 아주 금시발복된다구 말여. 그래가 그 선바위 밑에가 저 뭐 명주실이 한 꾸러미가 들어간다고 했잖여. 그러니까 금방아가 묻혔다는 거 아녀. 그러니께 여기에 길을 내면 금시발복되고 아주 큰 사람이 난다고 그 중이 그랬단 말이여. 진짜인줄 알고 그러니께 아 거길 끊고 보니까, 아 살을 끊어서 피가 나왔다는겨. 살을 끊어 가지고. 그래서 살고개라고 하는겨, 살을 끊어 가지고 이름이 살고개여. 그래서 거기에 서낭당을 맹글었데잖어. 그래서 나 학교 다닐 때 좀 일찍 가면 돈도 줍고 그랬었는데, 그 서낭에서 허허허.” 살고개 마루에 있는 서낭당[성황당]은 지금도 그 형태를 간직하고 있어서, 피서대로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