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16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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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沙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종진 |
성격 | 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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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채지홍(蔡之洪) |
창작연도/발표연도 | 조선 후기 |
[정의]
조선 후기 채지홍이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에 있는 백사장의 빼어난 경관을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개설]
봉암(鳳巖) 채지홍(蔡之洪)[1683~1741]은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봉암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재능과 지혜가 출중하여 8세에 이미 한시를 지어 세인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성리학적 소양이 높았다. 한때 충청도사 등의 관직을 지냈으나, 당시의 당파 싸움에 혐오를 느껴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취임과 사퇴를 반복하였다. 낙향하여서는 봉암마을에 봉암정사(鳳巖精舍)를 지어 놓고 후진 교육에 힘썼으며, 많은 한시를 남겼다. 저서로 『봉암집(鳳巖集)』, 『성리관규(性理管窺)』, 『세심요결(洗心要訣)』, 『독서진보(讀書塡補)』, 『천문집(天文集)』 등 10여 권이 있다.
평사(平沙)라고도 불리는 평산리 백사장은 삼대천의 합수 지점으로, 백사(白沙)가 십리를 뻗치고 기암괴석이 많은데다 기러기 떼가 날아와 앉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여 평사낙안(平沙落雁)으로도 불린다. 이 같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하여 예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이 시가(詩歌)를 지어 남겼다.
[내용]
높고 험한 바위에 맑은 호수여[白馬巉岩湖水淸]
고인의 옛 자취는 빈 정자에 오락가락하는 듯[古人遺蠋一虛亭]
풍표는 뜰 앞의 청송을 상상하는 곳[風標想像庭松翠]
안색은 희미한 달빛에 의지함 같도다[顔色依俙屋月明]
지난일은 그윽이 옛 시만 남았고[往事煁傷詩獨在]
오늘에는 술잔만 자주 기울이네[今來何忍酒頻傾]
고기 떼 새 떼 모두 목메어 슬피 우는 듯[溪魚沙島同悲咽]
사양의 피리 소리 그 정서 하염없네[隣笛斜陽不耐情]
[특징]
한시의 일반적 진술 형태가 그러하듯 「평사(平沙)」 역시 선경후정(先景後情)을 바탕으로 대상과 외물(外物)의 자극에 의해 감정이 촉발되어 일어나는 흥취를 노래하고 있다. 시인은 평사 인근의 정자에 올라 옛 사람들의 삶의 자취를 생각해 보는 데, 그들은 간곳없고 그들이 남긴 시만 있다는 이야기이다. 인간의 삶의 유한성과 무상함을 노래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사대부들에게 한시는 인격을 수양하고 교양을 연마하는 필수 수단이었다. 이는 자연을 감상하고 즐기되 완물상지(玩物喪志)하지 않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사(平沙)」에서도 자연에 대하여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