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8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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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榮國 |
영어음역 | Kim Youngguk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연정 |
성격 | 국가유공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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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 |
성별 | 남 |
생년 | 미상 |
몰년 | 1951년 |
본관 | 안동 |
대표경력 | 육군 중대장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국가유공자.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에서 김규원(金圭源)의 장남으로 출생하여 1951년에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김영국은 어릴 때부터 문리에 통하였고 특히 전쟁놀이를 좋아했다. 지금의 삼수초등학교 전신인 신명학원에 다녔다. 가정이 극히 빈곤하여 짚신이 아까워 맨발로 뛰어서 학교를 다니는 근면하고 착실한 학생이었다. 1947년 4월 청주 제2사단의 1기생으로 입대하였다. 사단에서도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여 특히 상사의 신임을 얻어 육사를 단기로 졸업하고, 군에 복무 중이던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1951년 6월 6일 김영국은 중위로서 중대장으로 금화고지전투에 나가 734고지[일명 김일성고지] 탈환 작전에 70명의 소수 부대로 700명의 북한군 섬멸에 성공하여 막대한 전리품을 노획하였다. 그 후 7월 1일 적의 재탈환 공격이 있자 중대원을 독려하여 고지 사수에 전력을 다하였다. 밀고 밀리는 대접전이 펼쳐지던 만 11일간의 치열한 전투 중 김영국은 적탄에 왼쪽 가슴을 맞고 쓰러졌다. 그 후 지원부대가 734고지에 도착했을 때는 우군이 불과 5명밖에 없었다.
[상훈과 추모]
1951년 9월 30일 대구육군본부에서 추모식이 거행되었으며, 1계급 특진되어 대위가 되었다. 미국 대통령의 은성훈장을 김영국 대위 아버지에게 수여하였고, 유엔에서도 공로를 높이 찬양하여 훈장을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