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641 |
---|---|
한자 | 宋必滿 |
영어음역 | Song, pil ma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낙진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제헌국회 의원에 당선된 정치가.
[활동사항]
송필만(宋必滿)[1887~1978]은 1887년 12월 3일 지금의 경기도 이천군 장호원읍에서 태어났다. 호는 명고(鳴皐)이며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신학문을 배우고자 일본에 유학하여 중앙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연희전문학교 교수를 지냈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이승만과 함께 항일 운동을 하면서 사우스웨스턴 대학과 아메리칸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였다. 1920년 6월에는 일제 내무성 경보국 보안과에서 작성한 요시찰 인물에 올라 있을 만큼 항일 운동에 전력하였다.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진천군 이월면 송림리로 이사하여 농사를 지으며 소일하였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상해임시정부 국내 환송회를 준비하는 데 교섭부에 소속되어 일을 하였다. 그 후 정계에 입문하여 활동하였으며, 1948년 5월 10일에는 제헌국회 의원으로 진천 지역에서 당선되었다. 반민특위에 피선되었으며 민주한국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그 후 재야에서 반독재 투쟁에 헌신하였으며, 1960년 4·19혁명 이후 충청북도에서 민주당 참의원에 당선되어 나라의 기틀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였다. 5·16군사정변 이후에는 정계를 은퇴하여 여생을 보내다가 1978년 7월 23일 92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