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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대소사에 없으면 안 되는 분이지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E030302
지역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 종현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진호

김복동 옹에 대해 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분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릴 적부터 예능에 소질이 있던 그는 어깨너머로 어른들의 소리를 배워서, 소리를 하던 어른들이 나이가 들어 하나 둘 세상을 떠나자 그 뒤를 잇게 되었다. 또한 어린 나이에도 동네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경을 읽어주러 다녔다. 예전에 종현마을에서는 환자가 생기면 각성받이 3인[혹은 5인]이 환자가 있는 집을 찾아가 경을 읽어줌으로써 환자와 가족에게 위안을 주었는데, 이러한 경읽기는 당시 육지와 떨어진 섬으로 치료를 받을 병원이 없던 이곳에서는 신앙심에 기댄 1차적인 치료 수단이기도 하였다.

이런 경읽기도 의료 시설이 들어서면서 점점 줄어 1980년대를 전후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경읽기를 하던 사람들 중 가장 젊은 나이로 참가했던 그를 제외하고 다른 분들은 이제 대부분 작고하여 이때 하던 경읽기 소리도 잊혀져 가고 있다고.

이밖에도 김복동 옹은 풍물놀이를 할 때에는 상쇠잡이로 앞장을 섰고, 집집마다 마당밟기를 하며 돌아다닐 때는 고사반을 놓고 하는 덕담을 도맡아 했으며, 상여가 나갈 때는 「상여 소리」의 선소리꾼이 되기도 하였다. 마을 사람들의 애경사와 단합대회, 마을잔치 등 흥을 돋우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만사를 제쳐두고 앞장서 봉사하였다. 특히 마을에 초상이 나면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꺼려하는 수세와 염습을 직접 하여 종현마을에서는 선생님 대접을 받는다.

김복동 옹의 생활신조는 “어느 곳에서든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라.”는 것으로, 자식들에게도 항상 이런 가르침을 준다고 하였다. 생활신조가 그래서인지 마을의 어려운 일이나 마을의 화합이 필요할 때 앞장서 일하고 흥을 돋우는 일이 그의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생활 덕분인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 하나 없이 맨 몸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단단하게 기반이 잡혀 있다.

김복동 옹은 지금까지 계획했던 여러 일들이 실패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은 자신의 능력보다 마을을 위해 열심히 일한 덕분이라고 말한다. 마을 일을 자신의 일처럼 나선 덕으로 불가능할 것 같던 일도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마을에 좋은 땅이 생겨 꼭 구입하고 싶었는데,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이 전혀 없었어. 그런데 아는 사람들이 조건 없이 자금을 빌려주어 어려움 없이 쉽게 땅을 살 수 있었지.”

종현마을에서 누구보다 신망이 두터운 그가 지금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어렸을 적 어른들을 따라다니며 익힌 우리 소리들을 물려줄 만한 사람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 마을의 소리와 전통 풍물을 후대에 전승하기 위해 여러 사람에게 가르쳤으나, 모두 먼저 세상을 떠나고 소리를 아는 사람은 이제 자기밖에 안 남았다며 아쉬워했다.

김복동 옹은 척박한 섬마을에서 우리 선대들이 겪었던 경제적인 빈곤을 자신의 성실한 노력으로 극복한 사람이자, 마을의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재능을 살려 봉사함으로써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신뢰받고 있다. 그리하여 그가 마을 사람들로부터 받는 신망만큼 “어느 곳에서든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되라”는 그의 생활신조는 오래오래 종현마을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끈으로 작용할 듯싶다.

[정보제공]

  • •  김복동(남, 1936년생, 대부북동 거주, 종현마을노인회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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