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E02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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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 종현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진호 |
섬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물이 귀하고 땅이 척박하여 농사를 짓고 살기에는 부적합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부도의 경우는 다르다. 섬에 맑은 물이 풍부하고 토지도 농사짓기에 좋은 점토질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예부터 대부도 사람들은 농사를 주업으로 하며 어업과 갯벌 일을 부업으로 삼고 살아왔다. 그러나 산업화가 진전됨에 따라 농업으로 인한 이익이 점차 줄어들면서 농사를 통해 살림을 꾸려가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그래서 1970년대만 해도 만 명에 육박하던 대부도의 인구가 현재는 4,000명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종현 마을도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 인천이나 수도권 주변의 대도시로 일거리를 찾아 떠나면서 인구가 점점 줄어들었으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꾸준한 노력으로 새로운 활로를 열었으니, 바로 포도 재배가 그것이다. 종현 마을 밭의 약 90% 이상은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예전에 논농사를 짓던 땅도 대부분 포도밭으로 바뀌었다.
이 포도 재배를 통해서 종현 마을은 가구 당 최저 2,000만 원에서 최대 수억 원의 농가 수입을 올리고 있다.
재배용 포도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홍만선의 『산림경제(山林經濟)』에 포도의 품종과 재배기술이 서술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재배된 것으로 보인다. 『남환박물지(南宦博物誌)』에 의하면 중국에 포도가 들어온 것은 128년 장건(張騫)에 의해서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보이는데 이보다 훨씬 후대일 것이다.
현재 재배되는 포도 품종은 1906년 유럽종과 미국종을 도입하여 품종을 선별하고 재배법을 연구하여 보급하기 시작한 뒤로 일반 과수원 형식으로 재배가 보급되었다. 현재 재배되고 있는 주요 품종은 캠벨얼리가 가장 많다. 종현마을의 포도 품종도 대부분 캠벨얼리 종이다.
대부도에 포도가 처음 들어온 것은 6·25전쟁 직후인 1954년으로, 북4리[10통]에 살던 정경선 씨가 캠벨 50여 주를 심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때에는 자가 소비 수준에 머물렀으나, 20년 후인 1977년 김봉환, 김한규 씨 등이 포도 재배에 관심을 가지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포도 재배가 계기가 된 것은 1980년 농촌지도사인 구광회의 지도로 동6리 김석배 씨가 캠벨 50주, 거봉 20주를 식재해 1983년부터 높은 소득을 올리면서부터이다. 이후 포도 재배 면적이 급속하게 증가해 한때 150㏊에 이를 정도로 넓은 면적에서 포도가 재배되며, 지역 경제의 중심 작물로 자리 잡았다. 포도는 현재 대부도의 대표적 농산물로 그 생산량이 연간 10,660t에 달한다.
종현 마을에서도 1970년대 후반 김영산, 김인경, 예남돌 등 3명이 포도 재배를 처음 시작했다.
그때에는 포도를 재배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시장에 내다 파는 일까지도 함께 해야 하는 실정이었기 때문에 매우 힘들었다고 마을 사람들은 회상하고 있다. 수확한 포도를 소의 등에 싣고 방아머리까지 가서 1일 1회 운행하는 배로 인천까지 날랐고, 인천에서 다시 남대문시장으로 가서 팔았다고 한다.
당시의 어려움에 대해서 예남돌 옹은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그때만 하더라도 저희들이 포도 재배에 대한 기술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거예요. 그때 뭐 나온 책도 없고 그러니까 누가 이런 약을 쳤다 그러면 다 따라서 치고 뭐 그랬죠. 시행착오가 뭐가 그렇게 많았냐 하면 지주를 세우는 거죠. 처음에는 지주를 세울 때 참나무하고 밤나무를 썼었죠. 그런데 이제 이게 2~3년만 되면 썩어서 쓰러진단 말이야. 그래서 앵글을 짜서 지주를 세우기도 하다가 이제는 시멘트로 지주를 세우게 됐죠.
과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일의 질이란 말이죠. 그래서 품종을 고르는 것도 신경 쓰고, 지금은 코팅처리가 다 된 봉지가 있잖아요, 그때는 코팅 칠을 시원치 않게 해가지고, 비가 와서 봉투가 다 젖어서 다 망가지고, 또 약을 잘못 쳐 가지고 홀랑 죽여 버린 거야. 포도밭을. 그리고 탄도에 있는 농촌지도소가 있잖아요. 거기 역할이 아주 컸어요. 그 사람들이 와서 같이 공부하면서 포도를 키우는 거예요. 같이 공부하는 거지.”
포도 재배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한 농촌지도사들의 도움도 컸다. 농촌지도사들이 포도 재배와 관련한 이론을 가지고 오면 마을 사람들이 실제 농사에 적용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포도 재배 기술을 쌓아갔다. 현재 마을 포도 재배의 최고 권위자는 이의철[57세, 현 대부포도작목반 사무장] 씨라고 마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꼽는다. 이의철 씨는 포도를 재배하면서 실제 얻은 현장 지식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포도 재배를 견학하고 여러 포도 재배 관련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은 전문가로서, 이제는 종현 마을 포도 재배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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