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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는 것은 쉬웠는데 나가는 것은 어렵네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C030102
지역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민

독살[일명 돌살 또는 돌발]이란 어구(漁具)가 있다. 독살은 함정어구로 우리나라 남해안이나 서해안에서 지금도 발견되는데, 돌로 담을 쌓아 밀물 때 고기가 들어와 썰물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고안된 어업 도구이다.

원곡동에 사는 많은 사람의 생을 이런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을까? 한창 경기가 좋을 때 원곡동으로 이사하거나 이주해 와 부지런히 살다가, 적당한 시기가 되면 삶의 거처를 떠나는 이도 있었지만, 미련이 남아 옮기지 못하다가 결국 눌러 앉은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원곡동은 이주민의 동네이다. 이곳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어떤 계기로 동네로 들어와 사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맨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시흥군 군자면 사람들이었다.

그 다음에는 반월과 시화공단에서 취업한 근로자들과, 바로 그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거나, 집을 신축하거나 개축하여 방을 만들어 방세를 얻고자 이사 온 사람도 많다. 1990년대 이후에는 많은 외국인이 코리안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들어와 터를 잡은 곳이 바로 원곡동이다.

그들에겐 원곡동이 안산이고, 안산이 곧 ‘코리아’이기도 하다.

마을에 들어온 많은 사람에게는 처음에, 원곡동으로 들어오거나 들어오지 않거나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보다 나은 미래의 삶을 꿈꾸며 원곡동을 선택했고, 원곡동에서 삶의 보금자리를 틀었다. 원곡동에 들어와 아이도 낳고, 돈도 벌고, 이웃을 만나고 사귀다 보니 그들은 점차 원곡동에 적응하여 동네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원곡동 사람 중에도 세상일은 기약할 수가 없어 마을을 떠나는 사람도 생겨났다. 그들 중에는 돈을 많이 벌어 고향으로 금의환향한 사람도 있고, 실패만을 맛보고 떠난 이도 있으며, 교육환경을 포함한 보다 나은 주거환경을 찾아 옮겨간 사람도 있다.

이제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에게는 나가는 자유가 그리 많지 않다. 원주민에게 원곡동은 돈을 벌어주고, 정든 친지가 있으며, 원래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삶의 뿌리를 내린 곳이다. 이주민 단지를 조성한 뒤에 동네로 이사 온 내국인에게도 일단 원곡동은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고, 생활에 익숙한 동네가 되었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에게도 각종 편의 시설과 생활 프로그램이 보장되고, 생활에 필요한 온갖 상점이 있으며, 일자리의 기회가 많이 주어지고 싼 방을 제공하는 이 동네를 손쉽게 떠나지 못한다. 떠날 이유보다는 남아야 할 이유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의 동네보다 더 나은 조건, 더 확실한 미래를 보장해 주는 곳이 그리 많지 않기에 그들은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경기가 급속도로 침체되어 반월공단의 공장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아 일자리가 크게 줄거나 없어지고, 비정규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강력한 단속이 연일 진행된다거나, 지역 개발로 방값이 크게 오른다면 떠나는 사람들은 많아질 것이다. 원곡동 국경없는 마을에는 아직도 많은 수의 이주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지금도 원곡동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원곡동은 또 다른 독살이다.

[정보제공]

  • •  안상목(남, 1937년생, 원곡동 거주, 주택경로당 회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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