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마지막 반월면장 심규범 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B030202
지역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 삼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현우

삼천리 마을이 있는 건건동은 행정구역상 반월동에 속한다. 반월동은 조선시대에는 광주군(廣州郡) 북방면(北方面)월곡면(月谷面), 성곶면(聲串面) 등 3개 면에 속하였다. 1906년(광무 10) 칙령 제49호에 따라 이 3개 면은 안산군으로 이관되었고, 1914년 부령 제111호에 의거 위의 3개 면은 다시 수원군 반월면으로 통합되었다.

통합 이전의 법정리를 보면 북방면은 속달1리(速達一里)[일명 갈틔]·속달2리(速達二里,)·속달3리(速達三里)[일명 납작골]·둔대리(屯垈里)[일명 둔터]·팔곡1리(八谷一里)[일명 남산뜰]·팔곡2리(八谷二里)[일명 담너머]·대야미리(大夜味里)[일명 대야미]·도마교리(渡馬橋里)[일명 도마다리]·건건리(乾乾里)[일명 건지미] 등 9개리이며, 월곡면은 상초평리(上草坪里)[일명 윗새우대]·하초평리(下草坪里)[일명 아랫새우대]·사사리(沙士里)[일명 사질이]·오룡동리(五龍洞里)[일명 오룡동]·당수리(棠樹里)[일명 당진개]·입북리(笠北里)[일명 갓뒤]·대대리(大垈里)[일명 큰터]·일리(一里)·월암리(月岩里)[일명 월곡] 등 9개리이고, 성곶면은 일리(一里)[일명 구룡골]·이리(二里)[일명 솔이웃]·삼리(三里)[일명 샘골]·사리(四里)[일명 주더리]·본오리(本五里)[일명 배웃]·분오리(分五里)[일명 오목골] 등 6개리로 반월면에는 모두 34개리가 있었다. 이 후 1949년 수원읍이 수원시로 승격될 때 이들 3개 면은 화성군으로 편입되어 화성군 반월면이 되었다.

1976년 반월신공업도시가 조성되며 팔곡2리, 본오리, 일리, 이리, 삼리, 사리가 반월출장소로 편입되었다.

1983년 의왕읍이 의왕시로 승격될 때 반월면의 월암리, 상초평리, 하초평리가 의왕시로 편입되었으며, 이후 1986년 1월 1일 반월지구출장소가 안산시로 승격되며 수암지소·군자지소·반월지소가 반월동·수암동·중앙동·군자동·원곡동·원초동·선부동으로 승격되었다.

1994년 반월면은 본격적으로 해체되었다. 수원시, 군포시, 안산시로 편입되고자 하는 주민들과 화성군에 그대로 남자고 하는 주민들의 의견 갈등이 심화되어 결국 주민투표가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군포시로 편입되기를 희망한 둔대리, 속달리, 대야미리, 도마교리의 경우 1,302세대 중 982세대가 투표에 참여하여 87.5%의 찬성으로 군포시로 편입되었다. 당수리와 입북리는 수원시로 편입되기를 희망하여 1,035세대 중 856세대가 투표에 참여하여 96.6%의 찬성으로 수원시로 편입되었다

나머지 팔곡1리, 건건리, 사사리는 안산시로 편입되기를 희망하여 3,843세대 중 2,639세대가 투표에 참여하여 85.4%의 찬성으로 안산시로 편입되었다. 이로써 34리의 반월면은 4개시로 분산되어 편입되었고, 행정동인 반월동만 안산시에 남게 되었다.

마지막 반월면장이자 초대 반월동장을 역임했던 심규범 씨는 어떻게든 반월면이 4개 시로 공중 분해되는 것을 막아 보려고 끝까지 주민들을 설득하였다고 한다. 반월면 34개 리가 그대로 남아 화성군에서 읍으로 승격되던가, 아니면 어느 시로 편입되더라도 한곳으로 편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사분오열된 주민들의 여론과 주장에 밀려 결국 1994년 주민투표를 하게 되었단다.

조선 말기 안산군 북방면장을 지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월곡면, 북방면, 성곶면 등 3개 면이 통합되어 수원군 반월면이 되었을 때 초대 반월면장을 지낸 심상형(沈相衡) 면장이 심규범 씨의 종고조부가 된다. 심상형 면장은 북방, 성곶, 월곡면 3개 면을 합쳐 초대 반월면장을 지냈으나 심규범 씨는 그 반월면을 4개시의 영역으로 해체한 마지막 반월면장을 지냈으니 참으로 묘한 인연이 아닐 수 없는데, 그래서 심규범 씨는 더욱 종고조부께 면목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정보제공]

  • •  심규범(남, 대야미동 거주, 전 반월면장)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