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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일도 함께하고[마을의 공동조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B030102
지역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 삼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현우

안동장씨와 창녕조씨 두 집안은 삼천리의 위아래에 마을을 이루고 수백 년을 함께 살아왔다.

두 집안사람들이 수백 년을 큰 다툼 없이 지내 오면서 피를 나눈 한 가족이라는 정서가 마을 전체에 스며들어, 마을 사람들의 우애는 외지인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매우 깊다. 이러한 우애는 각종 경조사를 함께 치르면서 기쁨은 서로 나누고 슬픔은 서로 덜면서 더욱 깊어졌다고 한다.

삼천리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경조사를 모두 함께 자신의 집안일처럼 치렀다. 지금은 경조사가 생기면 봉투에 약간의 부조금을 넣어 전달하는 것이 전부이지만 예전에는 몸부조를 더 많이 했다고 한다.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접대하는 일 등은 마을의 부녀회가 맡아서 했고, 상여나가기나 회다지 등의 일은 마을 장정들이 모여서 했다.

장례를 치르면서 들어온 부조금은 장례가 끝나고 정산을 해서 장씨네 3할, 조씨네 3할, 부녀회 3할로 나누었고, 나머지 1할은 상주에게 주어서 삼우제 때 손님 치르는 비용으로 쓰게 했다. 이렇게 모은 돈은 마을의 공동기금으로 관리해서 마을 잔치나 단체 여행을 갈 때 사용했다고 한다.

현재 마을의 공동 조직으로는 4H 농민회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4H 농민회의 초대 회장은 장동호 씨였는데,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추진될 때는 퇴비 만들기, 품종 대회, 황무지 개간하기 등을 하느라 정말이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단다. 그때 동네에 상수도를 파는 사업도 해서, 그전에는 우물을 사용하던 집들이 수도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고속도로로 인해 물길이 끊겨 그때 만들었던 상수도를 사용하는 집은 한두 가구뿐이라고 한다.

삼천리의 부녀자들은 윗삼천리, 아랫삼천리 가릴 것 없이 모두 새마을부녀회의 회원이다.

새마을부녀회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에 일손을 돕는 역할을 하는데, 특히 혼례나 장례 때에는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접대하는 일까지 두루 맡아서 한다. 마을 노인들을 위한 경로잔치뿐만 아니라 마을 꽃길 가꾸기, 봄·가을 마을청소 등도 부녀회의 활동 중 하나이다.

또한 부녀회는 마을의 기강을 바로 잡는 역할도 하였다. 부녀회가 결성된 이후 지금까지 삼천리 마을의 특징 중 하나는 마을에 물건을 파는 가게나 술을 파는 술집이 단 한 곳도 없다는 것이다. 물건을 사거나 술을 한 잔 하려면 마을 입구까지 나가서 서낭당 옆에 있는 주막집에 가거나 장고개를 넘어 반월장터까지 걸어 나가야 한다.

담배나 술을 파는 가게나 술집이 있으면 마을 사람들의 기강이 해이해지므로 부녀회에서 가게를 열지 못하게 막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삼천리 마을에서는 노름하는 것을 볼 수 없다. 부녀회에서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 노름을 하게 되더라도 다른 마을에 가서 하면 했지 절대 삼천리 마을 안에서는 농한기에라도 노름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정보제공]

  • •  조희찬(남, 1930년생, 건건동 거주)
  • •  장소진(남, 1942년생, 건건동 거주)
  • •  장동호(남, 1947년생, 건건동 거주, 전 안산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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