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A010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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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신대광 |
선부동에서 화정8교를 지나 화정동으로 들어가자마자 왼쪽으로 들어가면 고주물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이곳으로 계속 가다보면 오른쪽으로는 너른 논이 펼쳐져 있고, 왼쪽으로는 낮은 산이 있다. 그리고 조금 더 가면 금방 고주물이 보인다. 마을에 다다르면 제일 먼저 ‘꽃우물마을’이란 마을 표석이 보인다. 삼거리에 있는 이 표석에서 왼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고주물마을에서 가래울마을로 넘어가는 길, 즉 안산에서 시흥으로 이어지는 조그마한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언덕이 하나 나오는데, 이 언덕을 넘기 바로 전에 발걸음이 닿는 마을이 대장골이다.
고주물에는 원래 소목고개와 대장골 언덕을 통해 안산과 시흥으로 오갈 수 있는 도로가 있었으나, 도로의 폭이 좁고 마을 안을 지나는 탓에 마을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하였다.
결국 도로를 이전하기로 하고 시흥과 안산을 잇는 길을 넓혀 포장하였는데, 그 길이 이 대장골 언덕을 지나간다.
마을 회관에서 오른쪽으로 돌아나가면 가래울 쪽으로 올라가는 큰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 조금 가면 고개를 넘어가기 전에 바로 대장골이 나온다. 대장골은 마을의 서쪽에 위치하며 큰 골짜기를 형성하고 있다. 마을 어른들에 따르면 이곳이 고주물 최초의 주거지였다고 하나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대장골이라 부르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임진왜란 당시 마을에 왜적이 침입했는데, 대장골 우물 위쪽 집에 살던 사람이 앞장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마을을 지켜냈단다. 그후 대장이 되어서 마을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하여 대장골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와 대장골이라는 명칭만 전할 뿐, 마을을 구했다는 옛 어른의 집터는 흔적도 없이 풀만 무성하게 자라 있다.
고주물의 웃말 사람들은 예전에 주로 대장골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는데, 갓 시집온 새댁들이 항아리로 물을 길어오면 절반은 길에 흘렸다고 한다. 이 대장골우물은 마을에 남아 있던 세 개의 우물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어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에, 지금도 운동 삼아 우물에 올라 물 한잔을 떠서 마시며 마을을 내려다보거나 주민들끼리 담소를 나누는 장소라고 한다.
옛날에 마을 일을 결정하시던 어른들도 자주 이곳에 올라 마을을 바라보며 신중한 결론을 내리곤 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왜적으로부터 마을을 구한 어른도 늘 마을을 바라보았기에 마을을 위하는 마음이 남달랐던 게 아닌가 짐작해 본다. 그 후에 전해진 이야기들은 알 수 없지만, 그때의 일을 잊지 않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우물 이름을 ‘대장골우물’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마을의 기운이 분출되는 곳이 대장골이라는 것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대장골에 쇠못을 박아 그 기운을 막으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마을 어른들은, 아마도 일제가 대장골이라는 지명이 마을의 정신적인 힘과 위안을 주고 마을을 지키는 역할을 하자, 그 힘을 막기 위해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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