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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1158
한자 金容鎭
영어음역 Gim Yongjin
이칭/별칭 영운(穎雲),향석(香石),구룡산인(九龍山人)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유주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행정가|서화가
출신지 서울특별시
성별
생년 1878년연표보기
몰년 1968년연표보기
본관 안동
대표관직 수원군수

[정의]

개항기에서 현대 안산에 거주하면서 활동한 행정가이자 서화가.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구(聖九), 호는 영운(穎雲)·향석(香石)·구룡산인(九龍山人) 등이다. 1878년(고종 15) 특진관(特進官) 김흥규(金興圭)의 아들로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나, 참판 김정규(金貞圭)에게 입양되었다. 양할아버지인 김병국(金炳國)이 영의정을 지낸 바 있으며, 친어머니가 흥선대원군의 외손녀로 당대의 세도가였던 안동김씨 가문을 배경으로 성장하였다. 묘는 안산시 상록구 일동에 있다가 도시화로 1979년에 화장되었다. 1968년에 세운 묘비의 비문은 박순석(朴淳碩)이 짓고, 글씨는 김충현(金忠顯)이 썼다.

[활동사항]

김용진은 시강원시종관(侍講院侍從官), 수원군수, 내부무 지방국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05년 관직을 떠난 후에는 40대까지 거문고를 타는 등의 유유자적한 풍류 생활을 하였다. 1919년 그림에 입문하여 서화에 전념하였는데, 광복 후 창설된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1949년부터 서예부 심사위원과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동방연서회(東方硏書會)의 명예회장, 한국서예가협회의 고문 등을 맡았다. 첫 개인전은 1964년 한국일보사 주최로 열렸다.

글씨는 안진경체(顔眞卿體) 해서(楷書)와 한예(漢隸)를 주로 썼고, 그림은 사군자와 문인화를 즐겨 그렸다. 만년의 작품은 격조 높은 필치와 풍부한 색채 구사를 보여주었는데, 이는 김용진만의 독자적인 수법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의 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부채를 제작해 기증한 일이 있으며, 이 사실은 김승학이 작성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친일파 명단에도 적혀 있다. 2008년 선정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미술 부문에 포함되었다.

[상훈과 추모]

1956년 서울특별시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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