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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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配斗 |
영어음역 | Han Baedu |
이칭/별칭 | 사경(士卿)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응숙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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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 |
성별 | 남 |
생년 | 1682년 |
몰년 | 1732년 |
본관 | 청주 |
대표관직 | 고령현감 |
[정의]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사경(士卿). 아버지는 판관 한성일(韓聖一)이며, 어머니는 함양여씨(咸陽呂氏)로 장령 여회제(呂會齊)의 딸이다.
[활동사항]
한배두는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에서 태어났다. 1710년(숙종 36) 생원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갔다. 이때 성균관의 재임(齋任)으로 있으면서 삼일제(三日製)에서 수석을 차지한 이광보(李匡輔)가 윤증(尹拯)이 죽었을 때 제문(祭文)을 지어 조문한 것이 송시열을 침욕하였다 하여 벌을 베풀어 전시(殿試)에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당시 숙종은 명으로 이광보의 벌을 풀라고 하였으나 한배두는 소회(所懷)를 써 올려 이광보의 벌을 끝내 풀지 못하게 하자 숙종이 노하여 정거(停擧)를 명하였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이 되고 1726년(영조 2) 광흥창봉사(廣興倉奉事), 도사(都事), 좌랑(佐郞) 등을 역임하였다. 1731년 한성판관 등을 지내고 고령현감으로 나아갔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