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6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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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光溥 |
영어음역 | Lee Kwangbo |
이칭/별칭 | 자연(子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명우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평창(平昌). 자는 자연(子淵). 판서 이계남(李季男)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배(李培)이고,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이명석(李命錫)이다. 어머니는 조창구(曺昌久)의 딸이다.
[활동사항]
이광보(李光溥)[1694~1773]는 1715년(숙종 41)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승문원정자에 임명되었고, 그 뒤 사헌부장령·사간원헌납·사헌부집의·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756년(영조 32) 함경도 경성부사로 재임 중 힘을 다하여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였고, 임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 가진 것이라고는 오직 낡아빠진 침구뿐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목민관으로서 백성들에게 힘을 쏟았지만, 집안 살림은 제대로 돌보지 않는 등 청렴한 생활을 하였다. 정승인 김재로(金在魯)는 “이광보를 등용하지 않으면 어찌 다른 인물을 쓰겠는가.”라면서 칭송하였고, 여러 중신들도 한결같이 그의 인물됨을 칭찬하였다. 1772년(영조 48) 봉조하(奉朝賀)가 되어 궤장(几杖)을 하사받았고, 1796년(정조 20) 우윤 윤필병(尹弼秉)이 이광보를 청백리로 추천하기도 하였다.
[묘소]
묘소는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과 시흥시 군자동에 걸쳐 있는 군자봉(君子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