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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416
한자 烽燧
영어음역 Bongsu
영어의미역 Beaco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근호

[정의]

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소식을 전하던 통신 수단.

[개설]

조선시대 통신 수단의 하나였던 봉수는 불을 이용해 위급한 상황을 알리던 시설이었다. 평시에는 하나, 적이 나타나면 둘, 적이 국경에 가까이 오면 셋, 국경을 침범하면 넷, 교전 상태에 들어가면 다섯 개의 횃불이 피어올랐다.

봉수의 간선은 직봉(直烽)이라 하여 동북은 경흥, 동남은 동래, 서북 내륙 지방은 강계, 해안 지방은 의주, 서남은 순천을 기점으로 하고, 서울 목멱산(木覓山)[남산]을 종착점으로 하였다. 이 밖에 간봉(間烽)은 전선의 초소로부터 직봉선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하거나 전선에서 직접 본진이나 본 읍에 이르는 단거리의 보조선이었다.

[분포 현황]

안산 지역에는 제5거선 선상에 위치한 두 개의 봉수가 설치되었다. 제5거는 전라도 순천 방답진에서 출발한 신호가 경기도에 들어와, 양성·수원·남양의 해운산을 거쳐 안산을 지난 뒤 다시 부평을 거쳐 양천 개화산에서 한양 목멱산에 전달되는 구조였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따르면, 안산에는 “군의 서쪽에 오질애(烏叱哀)[오이도]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무응고리(無應古里)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인천의 성산에 응한다. 무응고리는 군의 서쪽에 있으며 남으로는 남양 해운산에 응한다.”고 하여 2개의 봉수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무응고리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고 있는데, 무응고리 봉수가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 보이는 정왕산(征往山) 봉수라고 하는 견해도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분명하지 않다. 무응고리를 현 군자면 정왕리 봉우재의 봉화산으로 비정하는 견해와 오질애와 해운산 간의 도서 또는 해안으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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