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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광주군 세촌면 단대동(丹垈洞)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은행정이 논골, 금광리를 병합 단대리라 하여 중부면에 편입되었으며, 1971년 7월 창곡을 병합하여 단대동으로 되었다. 단대동은 1976년 10월 단대1동, 단대2동으로 분동되었으며 단대2동은 1980년 9월 다시 단대2동, 단대3동으로 분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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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광주군 세촌면 단대동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은행정 논골, 금광리를 병합 단대리라 하여 중부면에 편입되었다.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입되고 1973년 7월 창곡을 병합하여 단대동으로 되었다. 단대동은 1976년 10월 단대1동, 단대2동으로 분동되었으며, 단대2동은 1980년 9월 다시 단대2동, 단대3동으로 분동되었다. 그후 1989년 5월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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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생(75세)으로 광산김씨이다. 600여년간 현재 중원구 금광2동에 광산김씨 집성촌이 형성되어 왔고, 본인도 여기서 낳고 살았다. 일제강점기 때 현 남한산성에 있는 남한산성초등학교에 다녔다. 당시는 송파, 중부면, 하남시 일대에 국민학교가 하나밖에 없었다. 신익희 선생도 남한산성초등학교 2회 졸업생이란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6㎞ 정도 된다. 중학교는 당시 중고등학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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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김씨로, 가족은 부인과 자녀 2남 3녀이다. 큰딸은 시집가서 외손녀가 중학교 다니는데 같은 집에서 동거한다. 다른 아들과 딸들은 분가하여 따로 산다. 결혼은 스물두 살에 했다. 부인은 광주이씨로 양주 출신인데, 당시 세살 아래로 열아홉 살이었다. 전통혼례로 처가에서 치르고 다음날 하루에 집에 못 와서 중간에 하남에 있는 친척 집에서 자고 왔다. 선산은 원래 금광2동 현재 신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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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광주군 세촌면 단대동(丹垈洞)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은행정이 논골, 금광리를 병합하여 단대리라 하여 중부면에 편입되었다.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입되고, 1973년 7월 창곡을 병합하여 단대동으로 되었다. 단대동은 1976년 10월 단대1동, 단대2동으로 분동되었으며, 단대2동은 1980년 9월 단대2동, 단대3동으로 분동되었다. 그후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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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별, 계절별 의복을 회상하면, 해방되기 전에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초등학교 다닐 때는 바지, 저고리에 조끼를 입는 한복을 입고 다녔다. 농촌이므로 옷감은 자급자족이었다. 베, 모시 등의 여름옷과 겨울에는 무명으로 된 바지 저고리와 여자들은 저고리와 치마를 입었다. 6·25전쟁을 계기로 남녀의 옷의 차이가 줄어들었다. 6·25전쟁 후에는 일반인은 물론 학생들도 염색한 군복을 입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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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단이라고 짜놓고 생활한 적은 없고, 주식은 밥, 김치, 된장, 고추장이었다. 쌀은 뒤주나 항아리에 넣어 보관하였고, 채소는 겨울에 움집에 넣어 보관하였으며, 가정마다 메주를 만들어 간장과 된장을 담갔다. 간식으로는 조청이나 엿을 고아 먹었거나 배급 나온 흑설탕을 즐겼고, 손님이 오면 계란을 찌거나 닭을 잡아 대접하기도 하였다. 계절에 따른 음식으로 봄에는 쑥을 넣은 개피떡,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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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2동은 단대오거리에서 동쪽의 남향받이 언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웃말, 아랫말, 중간말로 이루어졌다고 하나 단조로운 밀집된 단독주택으로 이루어졌다. 개발전에는 기와집과 전통한옥이 있었으나 지금은 양옥 중심의 주택 밀지지역이다. 도로변에 약간 높은 5층 이상의 건물이 약간 있을 뿐, 단층 내지는 2, 3층의 단독주택 및 연립주택 다세대주택이 중심을 이룬다. 남향으로 주택지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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