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평산(平山).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평천부원군(平川府院君)에 봉해진 충헌공 독송재(獨松齋) 신잡(申磼)의 6세손이다. 신대기(申大驥)는 낙향하여 향학 발전에 노력했던 신잡의 영향으로 그 역시 지방의 향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신잡이 진천으로 낙향하여 향학 발전에 힘쓰고부터 집안에서 대대로 이에 노력하였던 것으로 보...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낙규(洛圭), 호는 다전(茶田). 진사 안형(安泂)의 8세손이다. 안철중(安徹中)[1869~?]은 성품이 온순하고 과묵하나, 과감하였고 재주가 뛰어났다. 12세에 “새들이 저 먼 봉우리에서 지저귀니 산 그림자가 사리지고, 지나는 길손이 다리를 밟으니 물소리가 들리는구나[原峀鳥穿山影去 短橋客踏水聲來]”라는 시...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양숙(養叔), 호는 물재(勿齋). 현감 유헌민(柳獻民)의 6세손이다. 유득배(柳得培)는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특히 『소학(小學)』의 강론에 힘썼다. 덕성이 중후하고 문장이 뛰어나 고을에서 이름이 났다. 향공(鄕貢)으로 천거되었으나, 요절하여 고을 사람들이 모두 애석해하였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자화(子和), 호는 물기재(勿欺齋). 아버지는 유심원(柳心源)이다. 유수응(柳秀應)은 1864년(고종 1) 증광진사시에 3등 98위로 입격하였으며, 수직으로 동지(同知)에 올랐다. 전심으로 경학을 연구하였으며, 유고(遺稿)가 있다고 전해진다. 『상산지(常山誌)』에 관련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이자 장서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재대(載大)이며, 호는 담헌(澹軒)·소금산초(小金山樵)·무우자(無憂子)·금산병부(金山病夫)·담옹(澹翁)·담헌거사(澹軒居士)·담암(澹庵). 할아버지는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의 셋째 아들인 좌의정 이경억(李慶億)이며, 아버지는 문형(文衡)이었던 이인엽(李寅燁)이고, 어머니는 임천조씨(林川趙氏)로 인천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상산(常山). 아버지는 임봉의(林鳳儀)이다. 임경원(林慶源)은 도암(陶庵) 이재(李滓)와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공부에 독실(篤實)한 모습을 보고 감탄하여 양호(養浩)라는 당호를 써 주었다. 『진천군지』에 임경원에 관한 기록이 실려 전한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상산(常山). 아들로 임경원(林慶源)을 두었다. 임경원은 도암(陶庵) 이재(李縡)와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의 두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그의 믿음이 두텁고 성실하다고 크게 칭송하면서 당호(堂號)를 양호(養浩)라 붙여 주었다. 임봉의(林鳳儀)는 평사(平沙) 민태중(閔泰重)에게 수학하였는데,...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상산(常山). 호는 극재(克齋)이다. 임형(林灐)는 전재(全齋) 임헌회(任憲晦)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효성이 지극하여 향천(鄕薦)을 세 차례, 도천(道薦)을 한 차례 받았는데, 이에 대하여 1932년 진천군에서 펴낸 『상산지(常山誌)』「학행(學行)」 편에 ‘임형호극재상산인수업우전재임선생지문유효행삼입...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옥천(沃川).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인인 전승업(全承業)의 고손자이다. 유학자로 학문이 뛰어나고 경학(經學)에 몰두하여 여러 차례 향천(鄕薦)을 받았다. 이에 관한 내용이 『상산지(常山誌)』와 『진천군지』 등에 실려 전하고 있다....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치정(致正), 호는 명와(明窩). 양경공(良景公) 정희계(鄭熙啓)의 17세손이다. 정규해(鄭糾海)는 타고난 품성이 청렴결백하고 강직하였으며 효성 또한 지극하여 부모를 극진히 모셔 소문이 났다. 회당(晦堂) 윤응선(尹應善)[1854~1924]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학문이 높았다. 공부한 것을 토대로 정주(...
-
조선 후기의 유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7세손이다. 정덕환(鄭德煥)은 삼환재(三患齋) 채지홍(蔡之洪)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행동에 무게가 있고 학문을 깊이 연구하였다. 그는 일평생 학문을 깊이 연구하였으나, 현재 남아 있는 자료는 부족한 편이다. 그의 행적에 대해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와 『상산지(常山誌)』, 『진천군지』 등에 기...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지촌(芝村) 정흠(鄭欽)의 후손이다. 정익성(鄭益誠)은 경학을 깊이 연구하고,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효성스러워 여러 번 고을에서 천거되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청천당(聽天堂).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8세손이다. 정재옥(鄭在玉)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자세로 나이가 들수록 더욱 독실하게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래서 정산(貞山) 김정묵(金正黙)은 “백수(白首)로 경서를 깊이 탐구하였으며, 집에 깊이 파묻혀 시정(市井)에 나오지 않았다”라고 칭찬하였다. 늙어서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잉수재(仍樹齋).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8세손이다. 정재응(鄭在應)은 일찍부터 문경공(文敬公) 송환기(宋煥箕)의 제자로 들어가 유학을 깊이 공부하였다. 만년에는 쌍계산(雙溪山)에 들어가서 서재를 짓고 ‘잉수재(仍樹齋)’라는 편액을 걸어 놓았다. 그 때문에 잉수재라는 호가 붙었는데, 그곳에서 오로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육육당(六六堂). 증조할아버지는 정인환(鄭寅煥)이다. 정해용(鄭海容)은 성리학을 깊이 연구한 학자로 글과 그림에도 매우 뛰어났다. 『진천군지』에 정해용에 관한 기록이 실려 전한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평양(平壤). 충청절도사를 지낸 조맹손(趙孟孫)의 후손이며, 손자로 조한욱(趙漢旭)을 두었다. 조재숙(趙載琡)은 철종 때 지금의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에서 태어났다. 조선 후기 경사에 널리 통한 학자이자, 교육가였다. 늘 집안을 효(孝)와 우애로 다스리고 사람을 예로 대하였다. 또한 노계의숙(蘆溪義塾)을 세워 후진 양성에 힘...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군범(君範), 호는 봉암(鳳巖). 할아버지는 삼환재(三患齋) 채지홍(蔡之洪)[1683~1741]으로,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봉암마을에서 태어났다. 인천채씨(仁川蔡氏) 시조 채선무(蔡先茂)는 고려 중엽 벼슬이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使)에 이르렀는데 인천에 세거하였으므로 후손들이 인천을 관향으로 하게 되었다....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활동한 조선 후기의 유학자 본관은 완산이다. 호는 복재(服齋)이다. 전재(全齋) 임헌회(任憲晦)[1811~1876]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平山里)에서 살면서 평생 유학 연구에 종사하였다. 사후(死後) 임헌회의 제문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