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C03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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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삼덕리 3구 상덕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보은 |
[총알이 뚫고 간 다리]
최인환 할아버지는 1951년 군대에 입대했고, 이후 전투에 참여했다가 다리에 총알을 맞았다고 한다.
“나는 인저 전방으로 전투를 하러 갔었어. 거기서 싸우는데 무지하게 북쪽에서 폭격허더라구. 그때 하여간 폭탄이 무지 날라 왔었어. 그때 부상 당했던겨. 이 다리가. 그때 거기서 바로 대구병원으로 후송됐지.”
한번 전투가 시작되면 사망하는 군인들과 부상을 당하는 군인들이 속수무책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그 많은 군인들을 어떻게 다 후송하고 어디서 치료를 받았는지에 대해 당시 사정을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춘천 야산병원, 서울 야산병원에 그때는 뭐, 학교가 병원이었지. 환자들이 너무 많아서 부상자들은 학교로 갔었어. 학교가 병원이여. 병원은 많이 없는데 환자는 많으니까 휴교하고 그 학교가 병원이 된 거지 뭐.”
할아버지는 학교를 임시로 만든 야산병원[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상황 속에서 병원이 제대로 갖춰져 있을 리 만무했고, 병원까지 후송될 여유도 없었기 때문에 부대 근처 야산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된 것이다. 이후 여기저기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받았으나 완전하게 치료가 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1953년 1월경 부상을 당하고 4월에 제대를 하게 됐는데, 6·25전쟁은 3개월 후인 7월에 휴전이 되었다.
[6·25전쟁의 기억]
할아버지는 전쟁이 끝나고 얼마 후에 우연히 들었다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내가 몇 십 년 전 흘러 들은 얘기여. 이건 어떤 노인이 얘기해 준겨. 전쟁이 시작됐는데 어느 집 앞에 폭탄이 떨어졌댜. 그래서 불이 나고 그 열이 너무 세서 그 집 대문에 송진이 녹아내리는 걸 봤댜. 아마도 그 대문이 송판으로 만들어졌겠지. 하필 그 집에 주먹보다 큰 쇄 덩어리 파편 조각이 떨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댜."
할아버지가 전해 듣기론, 당시 그 집에는 네 식구가 살았다고 한다. 1남1녀의 남매와 아버지와 어머니, 아버지는 진천에서 서울의 대학병원까지 매일 출근을 했는데 그 당시 북한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던 때였다. 처참했던 6·25전쟁이 일어났던 그때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해 주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시절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끔찍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