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C010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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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삼덕리 2구 옹암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호 |
삼덕리 2구 옹암마을은 독바위마을로도 불린다. 군도 7호선이 마을의 남북을 관통하여 광덕사 부근에서 국도 21호선과 만나고 있다. 이 옹암마을 입구에 집채만 한 바위가 있다. 그 바위 모양이 항아리처럼 생긴 까닭에 ‘독바위’라 부르고, 마을 이름 또한 ‘독바위[옹암]’라고 지었다고 전해 온다.
우리는 옹암마을에 사는 김춘자 할머니와 김복남 할머니께 독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독바위는 이런 뜻이여!]
옛날 옛날에 이 옹암마을에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며느리, 손자, 손자며느리 이렇게 3대 여섯 식구가 단란하게 살았다. 어찌나 인심이 좋고 후덕한지, 누구라도 집을 찾는 사람이 있으면 물 한 모금이라도 먹여서 보낼 정도였다. 그래서 진천을 지나는 행인이면 누구나 이 집에서 하룻밤을 묵어가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될 정도였다고 한다.
하루는 세상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추하고 남루하고 흉한 거지가 이 집을 찾아왔다. 그런데도 가족들은 모두 하나같이 거지를 맞아들여 먹을 것을 준 뒤 목욕을 시키고 깨끗한 옷과 신발까지 새 것으로 한 켤레 마련해 주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고 난 거지가 주인을 불렀다. 그러고는 “내가 너무 신세를 많이 졌소. 당신네 온 집안 식구가 마음과 뜻이 한결같고 천사와 같구려. 당신들에게 아무것도 보답할 게 없어 이 구슬을 줄 테니 내가 떠나서 뒷모습이 보이지 않거든 만져 보구려.”라고 하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가족들은 거지가 말한 대로 구슬을 만져 보았다. 순간 하늘에서 찬란한 빛이 한 줄기 비치더니 큰 바위가 생겨났다. 신기하여 바위를 찬찬히 살펴보니 독 모양이었다. 그 후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정착하면서 큰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항아리는 원래 양식을 저장하는 그릇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삼덕리 옹암마을은 그 후로 의식을 해결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마을로 알려졌고, 실제로도 생활이 부유하고 인심도 유달리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났다.
[바위가 흔들리면 바람이 났어]
독바위에는 재미난 이야기도 많은데, 그 중 하나가 바람이 불어서 바위가 흔들리는 찰나에 길가에 여자가 지나가면 그 여자는 꼭 바람이 나서 도망을 간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마을 여자들은 독바위가 있는 곳은 잘 가지 않았고, 가더라도 바람이 불지 않은 날 그 앞을 걸어갔다고 한다.
또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 독바위 앞에서 기도를 하거나 소원을 빌면 언젠가는 꼭 이루어지다는 말도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도 마을에 사는 할머니가, 웬 택시기사가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고 한다. 이 택시기사는 그때뿐 아니라 손님 목적지가 옹암마을이면 꼭 택시를 길옆에 세워 두고 기도를 하고 간단다.
[옹암마을 자랑비]
삼덕리 옹암마을에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마을 사람들이 마을 입구에 세운 ‘마을 자랑비’다. 마을 자랑비는 1996년 8월 옹암마을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세운 것이다. 마을의 상징인 독바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독바위마을의 상징성 있는 이야기를 자랑하기 위해 비를 세워 놓은 것이다.
할머니 한 분이, 자신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보다 마을 사람이 하나가 되어 세운 마을 비니까 적혀 있는 내용을 직접 보라고 하며 소리 내어 읽어 주었다. 마을 자랑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우리 마을은 생거진천의 읍 소재지로부터 동북쪽 약 2.5㎞의 거리에 위치하여 앞으로는 진천 쌀의 주산지인 삼덕들이 시원스레 펼쳐 있고 뒤로는 소가 한가히 누워 있는 형국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북서풍을 막아 주니 유사 이래 천재도 모르고 새천년 풍년이라 인심도 또한 순후하다. 그리고 동네 입구의 동산에 천연적으로 생긴 독 같은 바위가 있어 독바위라 불리어 오고 있으며 그 유래는 이곳에 인심 좋고 후덕하기로 소문난 장자가 있어 누구에게나 후의를 베풀던 중 하루는 그 인정에 감격한 거지가 내가 떠난 뒤에 만져 보라며 보답으로 준 구슬을 만져 보는 순간 한 줄기 서광과 함께 독처럼 바위가 생겨났으니 이로부터 독바위[옹암]라 불렸다고 한다.
항아리는 식량을 저장하는 것을 상징하여 항상 풍요로운 마을로 많은 사람들이 정착하여 한 때는 70여 호가 사는 큰 마을을 형성하기도 했다. 1941년 백곡저수지 공사로 이주한 10여 호의 새독바위가 생겨났고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물결로 우리 마을에 녹색혁명을 일으켜 1978년 쌀 다수확 전국 최우수상 등 새마을로 선정되어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우수 마을 표창을 받았으며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 정신의 불꽃은 마을 사람들의 삶의 지표로 삼아 열심히 살아온 결과 진천군 내 가장 자랑스러운 옹암마을로 발돋움하였다. 이에 우리 마을 사람들은 더욱 더 잘 사는 복지 농촌 마을을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고자 주민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우다. 1996. 8. 옹암마을 주민 일동.
옹암마을은 덕문이들을 중심으로 벼농사를 주 생업으로 삼고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부자가 많았다. 특히 마을 자랑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인심 좋고 후덕했던 장자 전설과 함께 독바위의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독바위에 담겨 있는 후덕함과 풍요로움을 닮아 마을에 늘 풍년이 가득하다고 믿고 있으며, 독바위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