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C01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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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삼덕리 1구 하덕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호 |
[하덕에 함안조씨가 많이 살지]
삼덕리 하덕마을에는 유난히 조씨가 많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논에서 일하고 돌아오는 할머니에게 이곳이 혹시 조씨 집성촌은 아닌지 물어 보았다.
“내가 조씨요. 그렇지 여기가 함안조씨들이 많이 살고 있지.”
우리는 자신을 함안조씨라고 소개한 조숙자 할머니의 집으로 가서 하덕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조숙자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하덕마을은 원래 방죽이 있던 곳으로, 사람들이 방죽을 메우고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함안조씨 내력]
문헌에 따르면 함안조씨는 조정(趙鼎)을 시조로 하고 조야호(趙野虎)를 충청북도 진천군의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이다. 조선 단종 임금에 대한 불사이군 충절을 지킨 생육신 조려(趙旅)의 셋째 아들 조야호(趙野虎)가 진천읍 삼덕리로 이거한 후 그의 후손들이 550년 동안 세거하고 있는 것이다.
조정은 후당(後唐) 사람으로 신라 말에 귀화하여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 배현경(裵玄慶), 복지겸(卜智謙), 김선평(金宣平) 등과 교유하였다. 왕건을 도와 합천에서 기의(起義)하여 931년(태조 14) 고창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개국벽상공신대장군(開國壁上功臣大將軍)이 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인데, 후손들이 함안(咸安)에 세거하면서 본관으로 삼았다. 이 때문에 조숙자 할머니의 친정 집안에서는 지금도 함안에 가서 조상 제사를 모신다고 한다.
[함안조씨 자랑거리]
함안조씨는 조선조에 문과 급제자 32명으로 배출했는데, 특히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어계(漁溪) 조려가 유명하다. 조려는 단종 때 진사에 급제, 장래가 촉망되었으나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자 벼슬을 단념하고 고향 백이산(伯夷山)에 들어가 낚시와 독서로 여생을 마쳤다.
이밖에 충의공(忠毅公) 조종도(趙宗道)는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선조 때 양지현감으로 재직할 때 선정을 베풀었다. 정여립(鄭汝立)의 옥사 때 투옥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함양군수가 되었으나 사퇴하였다. 정유재란 때 의병을 모아 안의(安義)의 황석산성(黃石山城)에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근대 인물로는 조소앙(趙素昻)을 들 수 있다.
조계일(趙啓一)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조려(趙旅)의 8세손이다. 인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친 후 봉림대군이 심양에 볼모로 갈 때 호종하였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봉림대군이 가상히 여겨 시신을 본국에 보내어 장사를 치르게 하였다. 2009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진천에 세거하고 있는 함안조씨는 132가구에 421명으로 나타났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