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B010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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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 몽촌마을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서영숙 |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 산91-2번지에 위치한 채경언 효자문은 조선 인조 때인 1743년에 채경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채경언 효자문은 목조 건축물로 비지정 문화재이다.
[하늘이 내린 효자]
마을 가운데 약간 언덕진 곳 마을 우물 맞은편에 채경언 효자문이 있어서일까, 몽촌마을이 더 멋있어 보인다. 채경언이란 분에 대해 아느냐고 채건병 할아버지께 물었더니 자신의 12대조 할아버지라며 이야기를 해 주었다.
“효자는 나한테 12대여. 그 양반이 열두 살 적에 어머니가 병환이 나서 아주 중했어. 중하니까 열두 살 먹은 어린애가 손가락을 잘라 가지고 어머니 입에다 떨어트렸어. 그래서 그 영양가를 자셔서 그랬는지 깨어났다고. 돌아가시려던 양반이 회복이 됐어. 이제 있는데 나중에는 그 어머니가 또 병이 나서 돌아가고, 또 그 아버지가 나중에 돌아가시게 됐는데, 그 아버지가 몸져누울 적에도 또 4차에 걸려서 단지를 해가지고 수혈을 해서 부모를 살려놨어.”
채건병 할아버지에 따르면, 훗날 조정에서 이 사실을 알고 효자문을 내려주었다고 한다.
[연못에서 잉어가 나왔어]
진천문화원에서 발행한 『내고장 전통 가꾸기』라는 책에는 채경언 효자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순당 채진형 선생의 후손인 채경언은 인조대왕 때 사람으로 효성이 지극하기로 이름이 났다. 그는 자기 아버지께서 병환으로 누워 사경을 헤맬 때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살아나게 하였다. 그 후 다시 병이 재발되자 꽁꽁 얼어붙은 연못 얼음 위에서 밤낮으로 사흘간 무릎을 꿇고 엎드려 아버지의 병을 낫도록 빌었더니 무릎을 꿇고 있던 곳이 녹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잉어 한 마리가 치솟아 올라왔다. 채씨는 하느님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버지께 올렸더니 잡수시고 곧 완쾌되셨다고 한다. 얼마 후 어머니께서 눕게 되어 같은 방법으로 하여 어머니의 병환을 낫게 한 효성스러운 사람이다. 그 후 연로하여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 때 3년, 어머니 때 3년, 만 6년간을 시묘하여 주위 사람들의 칭송을 받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아신 인조대왕께서 정문을 내려, 후세 사람들의 효성스러운 귀감으로 삼고 있다.
사람마다, 그리고 책마다 효자에 대한 이야기는 비슷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나, 몽촌마을 채경언 효자의 효행을 기리며 몽촌마을의 따뜻한 정을 느껴 볼 수 있었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