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A020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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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설 |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마을은 전통적인 충·효·예의 고장답게 1년에 한 번 장렬사에서 제를 지낸다. 장렬사는 고려 무인 집권기의 권신 임연을 비롯하여 상산임씨의 시조인 흥화부원군 상산백 임희 및 조선시대 호조참의를 지낸 임구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구곡리로 가는 도로변 왼쪽의 산자락 끝 내구마을회관 맞은편에 있다.
1990년 11월에 세워진 장렬사는 본전과 외삼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삼문 밖 외정 왼쪽에는 사적비가 있다. 사당은 서향의 건물로 정면 3칸, 옆면 1칸 반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으로, 반 칸의 전퇴를 두었으며, ‘장렬사(壯烈祠)’라는 편액을 달았다. 정면에는 ‘충의문(忠義門)’이라고 현판한 소슬 삼문을 세우고 주변에는 돌과 회를 섞은 담장을 두르고 기와를 얹었다. 사적비는 거북 대좌 위에 높이 174㎝, 너비 62㎝, 두께 33㎝로 오석 비신(烏石碑身)을 세우고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형상의 이수를 얹었다. 비제는 ‘장렬사사적비(壯烈祠事蹟碑)’이며, 비문은 문학박사 임동철이 짓고, 글씨는 김동연이 썼다.
[구산동마을의 전통, 장렬사 제향]
우리는 화수회 회장을 오랫동안 역임해 온 임필수 할아버지에게 장렬사 제를 준비하는 과정과 제가 치러지는 시기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제첩이라고 하는 안내문 발송은 한 15일 전부터 해요. 음식은 여기 구산동마을에서 만들고요. 마을 주민들이 다 참여를 하지요. 장렬사에 제를 지내는 건 음력 9월 초정일에 합니다.”
장렬사 제는 1년에 한 번 음력 9월 초정일에 행해지는데, 제를 지내기 보름 전부터 상산임씨 문중과 진천의 유림들에게 안내문이 발송된다. 지금까지 장렬사 제는 주로 농다리축제 기간 첫째 날에 지내 왔으나, 2009년에는 농다리축제가 취소되는 바람에 10월 19일 오후 12시에 제가 치러진다고 하였다. 또한 장렬사 제는 사우보존회와 상산임씨 화수회가 함께 주관한다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장렬사 제가 있던 10월 19일, 제향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마을로 향했다.
11시경, 제가 시작하기 전부터 장렬사 맞은편에 있는 내구마을회관 앞에는 상산임씨 문중 관계자들과 진천의 유림들로 붐볐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오늘 있을 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을회관 안에서는 할머니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장은 전날 시장에 가서 봐 왔다고 말해 주었다. 또한 마을회관 한편에선 진천 유림인 성균관 유도회장 정제교 씨가 분방을 하고 있었다. 분방이란 제를 진행할 사람들을 나누어서 적는 것인데, 미리 적어 놓아야 하지만 참석한 사람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제사 당일에 적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장렬사 제향 모습]
모든 음식이 차려지고 재관들의 의복이 갖추어지면 제사가 시작된다. 우리는 장렬사 제향을 보기 위해 장렬사로 향했다. 임필수 할아버지는 사당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외삼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들어갈 때는 오른쪽 문으로 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왼쪽 문으로 나와야 하며, 가운데 문은 신문이라는 말을 해 주었다. 또한 남자는 왼손을 위쪽으로 하여 손을 모으고 여자는 오른손을 위쪽으로 하여 손을 모아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장렬사 제에 올라간 음식은 돼지머리와 북어포, 좁쌀, 조기, 돼지 수육, 쇠고기 산적, 새우젓, 백하수복[제주], 미나리, 7개씩 묶은 대파와 무였다. 모두 햇곡식으로 구산동마을 주민들의 정성이 들어간 것들이었다.
제 전체를 집행하는 집례와 삼헌관을 안내하는 알자, 제의 순서를 정한 글을 읽는 창홀은 푸른색 도포에 건을 쓴다. 집례는 사우보존회의 신응현 씨가 맡았다. 제를 지내는 동안은 알자의 역할이 중요한데, 성균관 유도회장 정제교 씨에게 알자의 역할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알자라는 분이 있어, 알자가 헌관들을 안내하는 거야, 알자의 안내를 받은 헌관들은 우선 관수세수를 하는데 관수세수는 손을 씻는 거야. 제사를 지내기 전에 손을 깨끗하게 닦는 거지. 알자들은 헌관이 하는 행동을 전부 집례한테 얘기를 해 주는 역할을 해. 어떤 동작이 끝났는지를 알아야 집례가 진행을 할 수 있으니까.”
영정 앞에서 향을 피우고 절을 하게 되는 삼헌관은 검은색 도포를 입고 건을 쓴다. 삼헌관 중 첫 번째로 의식을 행하는 초헌관은 진천군수 유영훈 씨가, 아헌관은 군의회 박양규 씨가, 종헌관은 상산임씨 종친회 임형옥 씨가 맡았다.
제의 전체적인 순서를 홀기라고 하는데 장렬사 제의 홀기는 다음과 같다. 오후 12시가 되면 제의 시작을 알리는 제례를 선언하게 된다. 그 다음 분방을 발표하고 알자가 모시고 온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이 차례로 나와 향을 세 번 피우는 삼상향(三上香)을 하고 술을 올린 후 재배를 한다. 장렬사는 임연과 임희, 임구 세 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만큼 영정과 제사상이 모두 세 개이다. 따라서 초헌관과 아헌관, 종헌관은 각각의 제사상에 향을 피우고 술을 올린 후 절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삼헌관 중 초헌관은 하는 일이 가장 많은데, 우선 점시(點視)라고 하여 제사상이 잘 차려졌는지 하나하나 검사한다. 그 다음 삼상향(三上香))을 하고 술을 따르면 대축이 신위(神位) 옆에서 축문을 읽는다. 그 다음 아헌관 역시 알자의 안내로 사당에 올라가 삼상향을 한 후 술을 올리고 재배를 하며, 마지막인 종헌관도 아헌관과 같은 예를 하게 된다.
이렇게 초헌관이 하는 일을 초헌례, 아헌관이 하는 일을 아헌례, 종헌관이 하는 일을 종헌례라고 한다.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가 끝나면 음복례를 하게 된다. 음복례란 신위 옆에서 축문을 읽었던 대축이 초헌관에게 제사 음식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
초헌관이 제사 음식을 맛본 후 폐백과 축문을 모두 태우는 망효례를 끝으로 제가 마무리된다.
제를 지내는 내내 장렬사 제향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경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을 통해 오랜 세월 변함없이 전통의 방식으로 제를 지내 온 것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장렬사 제가 끝난 후 내구마을회관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는 모습에서는 정겹고 단결된 마을의 모습도 느껴졌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