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A020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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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설 |
우리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8로 지정되어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농다리에 대한 조사를 할 때였다. 마을 사람들은 농다리 외에도 선바위와 용바위, 소원바위 등의 유래를 신이 나서 들려주곤 했다. 문헌에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고 일반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하는 바위에 관한 이야기에 흥미가 생긴 우리는 농다리 주변의 바위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농다리에 김서현 장군과 임연 장군 등의 이야기가 많이 전해 오는 것처럼 농다리 주변의 바위들에도 임연 장군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 오고 있었다.
[내기에 지자 화가 나서 집어던졌다는 선바위]
‘구산동’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는 선바위는 중리 느티나무 맞은편 상산임씨 선조비 앞에 서있다. 임준호 할아버지가 선바위에 얽힌 전설을 구성지게 말해 주었다.
“저기 구산동이라고 쓴 저 바위는 말이야. 옛날에 장수 오누이가 내기를 했대. 여자 장수는 저수지를 막고 남자 장수는 다리 놓는 내기를 했는데. 여자 장수가 앞치마에 돌을 가져와 들이부어서 이겼다는 거 아니야. 그래서 남자 장수가 화가 나서 양손에 들고 있던 바위를 집어던졌는데, 양쪽에 박혀서 지금 저 바위가 됐다는 거지.”
여자 장수는 저수지의 물을 막고 남자 장수는 다리를 놓는 내기를 했는데, 여자 장수가 꾀를 써서 내기에서 이기자 남자 장수가 다리를 놓던 큰 돌을 집어던져 그 돌이 지금의 선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문헌에는 임연 장군 남매의 내기에 관한 이야기가 이렇게 적혀 있다. 임연 장군 남매가 하루 안에 미호천에 다리 놓기 내기를 했는데, 임 장군은 돌을 모아 놓기로 하고 누이 장군은 긴 바위 한 개로 걸쳐 놓기로 작정을 했다. 그리하여 누이 장군이 여러 곳을 다니며 바위를 구해 가지고 와서 보니, 벌써 남동생 임 장군이 다리를 다 놓았으므로 화가 나서 집어던진 게 지금의 선바위란다.
임준호 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 속의 여자 장수와 남자 장수는 바로 임 장군 남매를 말하는 듯하고, 두 오누이가 놓기로 한 다리는 농다리를 말하는 듯했다.
선바위가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은 이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바위에 마을 이름인 ‘구산동’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임준호 할아버지는 “일본 놈들이 거북이에 아주 망한 사람들이거든. 거북이라면 아주 질린 사람들이여, 그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에. 그래서 이놈들이 여기 와서 거북이만 들어가면 죄 그냥 때려 부신겨. 그 저것도 그놈들이 파묻어 놓은걸, 그 전에 우리가 찾아서 여기에 세워 놓은겨. 그런데 여기에 이걸 놓느라고 저 짝에 세워 놓은 거지.”라며 일제강점기 때에 거북선을 무서워한 일본 사람들이 구산동의 마을 지명에 ‘거북 구(龜)’자가 들어가 있자 땅속에 파묻어 놓은 것을, 해방 후 마을 주민들이 다시 세워 놓았다고 말해 주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용마와 용바위]
쌍바위라고도 불리는 용바위는 농다리에서 120여m 아래에 있다. 용바위에도 역시 임연 장군과 관련한 사연이 깃들어 있었다.
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 세금천 건너편에서 한 젊은 부인이 내를 건너려고 하는 모습을임연 장군이 보았다. 임연 장군이 이상해서 물어 보니,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부지런히 친정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임연 장군은 효성이 지극한 여인의 모습에 감동하여, 용마를 타고 부지런히 돌을 실어 날라서 순식간에 다리를 놓아 부인이 무사히 세금천을 건너도록 하였다. 하지만 그러느라 용마는 지쳐서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는데, 용마의 바끈이 끊어져 떨어진 돌이 바로 용바위라고 전해지고 있다. 작은 용바위 위를 보면 용마의 발굽자국 두 개와 장수의 발자국 한 개가 선명하게 찍혀 있어 전설에 신빙성을 더해 주고 있다.
[주민들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녹두서리]
내구마을에서 남쪽으로 1㎞쯤 떨어져 있는 미호천 가에 있는 바위는, 옛날에 마을 아이들이 콩서리·녹두서리를 해서 구워 먹은 자리라고 녹두서리라고도 하며, 낚시터 같다고 해서 낚시바위라고도 부른다.
낚시바위에는 선바위 전설과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농다리 하나를 임연 장군 오누이가 함께 놓기로 했는데, 누이가 먼저 다리를 다 놓은 것을 보고 임연 장군이 망연자실하여 들고 있던 큰 돌을 그 자리에 내려놓은 게 낚시바위 혹은 녹두서리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매년 단오나 사월 초파일이면 동네 주민들이 풍물놀이를 하며 놀았다고 한다. 용바위에서 아래쪽을 보면 물 한가운데 길게 옆으로 놓여 있는 낚시바위를 볼 수 있다.
[소원을 말해 봐 바위]
농다리 건너 산기슭을 타고 아래로 약 500여m 내려가 산 능선으로 올라가 보면 초평면 화산리 밤 숲 앞 냇가 절벽이 나온다. 이 절벽 끝으로 중턱에 커다란 바위 구멍이 있는데, 이곳으로 돌을 던져서 물로 떨어지면 소원을 성취한다고 해서 소원바위라고 부른다. 밤 숲에서는 이 소원바위를 볼 수 없고, 산 능선에서만 볼 수 있다.
[살미기바위가 되어 버린 용의 피와 살]
살미기바위는 피서대 전설과 관련이 있다. 옛날 피서대에 살던 마을 사람들이 부자가 된다는 한 스님의 꾀에 넘어가 용고개[살고개]를 닦았는데, 실제로는 용의 허리를 잘라서 용의 피가 솟아오르고 살이 튀어 날아와 굳어진 게 살미기바위라고 전해지고 있다. 용바위 앞 큰 절벽 바위가 바로 이 살미기바위이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