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A02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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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설 |
구곡리로 들어서서 길을 따라 마을의 보호수인 느티나무와 구산정을 지나면 널따란 마을이 펼쳐진다. 왼편으로는 농다리전시관이 있고 오른편에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농다리전시관 옆길로 쭉 들어가다 보면 굴테마을[일명 굴티마을] 앞으로 세금천이 시원하게 흐르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농다리가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농다리라고 불리는 진천 농다리는 구곡리의 자랑거리 중 하나이다. 다리가 지네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지네 농(籠)자를 써서 농다리라고도 하고, 돌들이 얼기설기 얽었다고 하여 얽을 농자를 쓴다고도 하지만, 지네 농이란 글자가 『옥편』에 나오지 않은 글자여서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얽을 농(籠)자에 관한 유래는 「천년의 비밀, 진천 농다리」란 제목으로 KBS 1TV에서 방영된 농다리 전설에 관한 이야기에서 고증된 이야기로 신빙성이 있다. 이렇게 오래된 유래를 가진 농다리는 예부터 구곡리 주민들의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되며 천년의 세월 속에 신비한 이야기들을 감춰 두고 있었다.
[여인의 효심에 감동한 임 장군]
한낮의 더위를 피해 농다리전시관 앞 느티나무에서 쉬고 있는 마을 어른들을 만나 농다리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들이 없는지 여쭤 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재미있는 이야기보따리들을 풀어 놓기 시작했다.
맨 처음 농다리를 누가 놓았느냐고 질문을 던지자, 삼국시대 김유신 장군의 부친 김서현 장군이 놓았다는 설도 있고, 고려 때 임 장군이 놓았다는 설도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그 중 많은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 임 장군이란 분이 나오는데, 그 임 장군이란 분이 임연(林衍)[?~1270] 장군인지 임희 장군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고 했다. 할아버지 한 분이, 농다리가 축조된 연대를 봐서 족히 1,000년 세월을 가늠할 수 있는데, 임연 장군은 고려 후기 사람이므로 아무래도 임희 장군이 놓았다고 보는 것이 더 맞지 않겠느냐고 한다.
농다리 축조와 관련하여 각 문헌에 실려 있는 이야기 중 대표적인 게 여인의 효심에 감동하여 임 장군이 농다리를 놓았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단순히 임 장군이라고만 표현되어 있어 정확히 누군지는 알 수 없다.
이 전설에 따르면, 임 장군은 매일 아침 세금천에서 세수를 했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 그날은 특히 다른 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추웠는데, 세금천 건너편에서 한 여인이 내를 건너려고 했다. 임 장군이 여인에게, 이 추운 겨울에 무슨 연유로 내를 건너려 하느냐고 물었다. 여인이 답하기를, 아버지가 돌아가시어 친정에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임 장군은 여인의 딱한 모습도 모습이려니와 그 효성에 감동하여, 즉시 용마를 타고 돌을 실어 날라 부인이 무사히 세금천을 건너도록 하루아침에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장군 오누이의 힘내기]
농다리에 관한 이야기 중 빠질 수 없는 것 하나가, 장군 오누이가 힘내기를 하여 다리를 놓았다는 내용이다. 자리 짜는 데 남다른 솜씨를 갖고 있는 신중희 할아버지가 농다리에 얽힌 오누이의 힘내기 전설을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임 장군 남매가 놨다고 하는데. 내기를 하기를, 남동생이 서울 갔다 올 동안 여동생이 다리를 놓기로 했다는 거지. 그런데 어머니가 여 장군을 지게 하려고 콩 딱딱한 걸 일부러 먹으라고 했다는 거지. 콩 딱딱한 걸 먹으면 시간이 걸리잖어. 일부로 딸을 지게 하고 아들을 살리려 했다는겨.”
아들과 딸이 그렇게 다리를 놓는 내기를 했는데, 딸이 이길 것 같으니까 어머니가 콩 볶은 것을 주어, 시간을 빼앗아 아들이 이길 수 있도록 유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리한 딸은 콩을 한 개씩 집어 먹지 않고 한 입에 툭 털어 넣고 또 털어 넣고 하여 빠르게 다리를 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임준호 할아버지가 또 다른 내용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때 장수가 둘 났었대. 딸두 하나, 아들 하구. 그래 갖고 지금은 여자나 남자나 동등하지만 옛날에는 여자를 죽일라고 그런 거 아녀. 그래서 여자는 지금 저수지, 보를 막으라고 하고 남자는 다리를 놓으라고 한겨, 근데 다리는 큰 돌 가져다 주섬주섬 놓으면 쉬울 거 아녀. 근데 여자가 기술이 어떻게 좋은지 이 앞치마에다 하나씩 안아다 돌을 들이부어 가지고 이겼댜.”
그런데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할아버지 한 분이, “이길 것 같으니까 찰떡을 갖다 줬댜. 딸을.” 하면서 또 새로운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말을 들은 임준호 할아버지가 그 이야기에 반박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니여. 찰떡이 아니라, 딸은 쥐눈이콩, 여자한테는 쥐눈이콩을 볶아다 주고 남자는 반콩,그 굵은 거, 이거 한 톨씩 먹고 돌 하나 싣고 갖다 놔야 된다고 그랬대. 아, 그런데 쥐눈이콩이 여간 잘어? 그런데도 그냥 한 움큼씩 쥐어서 입에 툭 털어 놓고 얼른 갖다 치마폭에 싸다 들어붓고 그런겨. 여자가 더 머리가 좋은겨. 한 개씩 먹으란다고 한 개만 먹겄어, 그까짓 거 죽을 판국에? 에이 드러버. 그 장군이 한 움큼씩 털어 넣으니 쉽잖어. 여자가 머리가 더 좋구 더 쎘다는겨. 옛날에두.”
이처럼 농다리에 얽힌 장군 오누이의 힘내기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천년의 세월을 견뎌 온 농다리의 돌덩이 하나하나에 재미있는 전설 한 가지씩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구렁이 울 듯 울기도 하는 농다리]
구산정 뒤편 언덕에 살고 있는 임상직 할아버지를 만나서 농다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더니, 할아버지는 농다리가 울기도 한다면서 말을 이어갔다. “농다리는 지금 말하자면 국가가 대사가 있을 때는 운다고 하는겨, 농다리가 운대.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못 들어 보고 오갑린가 거기 사람들은 들어 봤대. 옛날 어른들 얘기지만, 아무튼 농다리가 울었다는 거지. 어떻게 울었냐면 응, 응, 그냥 능구렁이 울 듯 운다는 거지. 그래 그때 박정희 대통령 죽었을 때 그때 한 번 울었다는 겨. 또 6·25 일어났을 때도 울었다고 하더라고.”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국가에 큰 변란이 나든지 동네에 변고가 있을 것 같으면 농다리의 돌덩이들이 하나둘 유실된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이렇게 농다리가 국가에 큰일이 있을 때 구렁이 울 듯 응응거리며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할아버지는 잠시 옛날 생각을 하는 듯했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