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16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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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松江墓所遷葬詩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종진 |
성격 | 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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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송시열(宋時烈) |
창작연도/발표연도 | 조선 후기 |
[정의]
조선 후기 송시열이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로 송강 정철의 묘를 이장한 후에 지은 오언율시의 한시.
[개설]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본관은 은진이고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우재(尤齋)·화양동주(華陽洞主)이다. 17세기 중엽 이후 붕당정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서인 노론의 영수이자 사상적 지주로서 활동하였다. 「정송강 묘소 천장시」는 송시열이 원래 경기도 고양에 있던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묘를 문백면 봉죽리로 이장한 후에 지은 작품이다.
[내용]
시비라는 것은 당연한 것도 있지만[是非自有當]
천장할 곳은 지금에야 이루어졌구나[宅兆今始臧]
천상의 삼광은 여기에 비치는데[天上三先照]
인간의 모든 일은 크기도 하구려[人間萬事荒]
처량하구나 진사년 이 해에[凄凉辰巳歲]
놀래리라 호성장은[警怪虎惺章]
무엇으로 명명한 그 덕을 칭송하리오[何以稱明德]
영전에 엄숙히 한 잔 올리나이다[寒流薦一觴]
[특징]
정철에 대한 사후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리는데, 송시열은 세인들에 의해 잘못 평가된 부분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며 그 높은 덕을 칭송하고 있다. 한시 중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현존하는 이장(移葬) 시로서, 송강 정철에 대한 헌시적인 성격이 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