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16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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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錦溪楊柳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종진 |
성격 | 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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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이후연(李厚淵) |
창작연도/발표연도 | 조선 후기 |
[정의]
조선 후기 이후연이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에 있던 금계양유에서 관찰사를 맞이하며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개설]
만오(晩梧) 이후연(李厚淵)[1798~1863]은 광평대군(廣平大君)의 14세손으로, 아버지는 이의수(李義守)이다. 그는 학자로서도 명망이 있었지만, 특히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효행이 지극하였다고 전해진다. 유고집으로 『만오집(晩梧集)』이 전한다. 만승면[현재의 광혜원면]에 있던 금계양유(錦溪楊柳)는 조선시대 관찰사를 맞이하던 곳이라고 한다.
[내용]
청문에 보낸 손님이 이 고장 찾아드니[靑門送客向舟基]
버드나무는 금수 가에 새 소식 전하는 듯[楊柳新詞錦水湄]
석양에 말을 채찍질하니 버들개아지 휘날리고[馬策斜陽揮白絮]
봄날의 꾀꼬리 소리 청사를 짜는 듯[鶯梭春日織靑絲]
아침 연기는 사방 숲에 비끼었고[終朝烟帶東亞樹]
땅을 쏟던 바람 나뭇가지에 맑게 걸렸구나[排地風淸上下枝]
사양에 원양댁을 찾지를 마소[莫向斜陽元亮宅]
명년 봄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 이식할까 두렵소[春來多恐五株移]
[특징]
「금계양유」에서 이후연은 새로 부임하는 관찰사를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맞고 있다. 때만 되면 반복적으로 수많은 관리가 이 고장을 거쳐 가지만, 도탄에 빠진 민생과 백성을 위하여 진정으로 선정을 베푸는 관리는 드문 것에 대한 아쉬움과 경계가 나타나 있다.
[의의와 평가]
「금계양유」는 당대 사회의 일반 백성들의 삶과 생활상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