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16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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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雙梧亭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종진 |
[정의]
조선 후기 박제형이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쌍오정에 올라 주변의 경관을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개설]
쌍오정(雙梧亭)은 조선 후기 문신 회와(晦窩) 이인엽(李寅燁)[1656~1710]이 벼슬길을 버리고 초평으로 낙향하여 지은 정자로,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이인엽은 이시발(李時發)의 손자로, 숙종이 중전 민씨를 폐하려 하자 재야 서인 인사들과 더불어 반대소를 올리는 데 참여하였다. 그 뒤 정계에 복귀하여 양역변통(良役變通)을 주관하였으며, 강화유수로서 치적을 남겨 사당이 세워졌다. 벼슬이 행이조판서·홍문관대제학에 이르렀다.
[내용]
심신산의 대세가 이리로 와서[二水三山大勢來]
쌍오정이 되고 그 아래는 봉황대로다[雙梧亭下鳳凰臺]
이대에 금릉이 있는 것은 아니니[比臺未必金陵有]
흥을 돋운들 어찌 이백 배만 하리오[引興何如李白杯]
[의의와 평가]
「쌍오정」에서 작자는 봉황대가 반드시 금릉(金陵)에 있어야 할 까닭은 없지 않느냐며, 쌍오정 아래 봉황대에서 마시는 술이 이백(李白)이 마시던 술보다 맛이 더 좋다고 자족하고 있다. 쌍오정이 있는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이 길지임을 예찬하며 삶의 만족과 자족을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작가인 판교(板橋) 박제형(朴齊珩)의 호방한 기질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