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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이 쉬는 명당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1624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동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담|풍수지리담
주요 등장인물 농부|선비|지관|아들들
모티프 유형 명당의 탈취|풍수무용론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서 나무꾼이 쉬는 명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나무꾼이 쉬는 명당 이야기」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서 채록하였으나, 내용 중에 관련 지역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 풍수지리담이면서도 특정 지역과 관련되어 있지 않아 지역성을 탈피한 일반화된 설화의 양상을 띤다고 할 수 있다.

[채록/수집상황]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주민 김용봉[남, 63]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1983년 충청북도가 출간한 『민담민요지』에 수록하였다.

[내용]

옛날 어느 산 밑에 가난하게 사는 농부가 있었다. 농부는 부자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어느 날 농부는 나무를 하러 가다가 뒷동산에 두 선비가 있는 것을 보고 늘 다니던 길을 피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한 사람은 지체 높은 벼슬아치이고 한 사람은 묏자리를 잡는 지관(地官)이었다. 한참을 서성거리던 지관은 한 곳에 이르러 나뭇가지를 꺾어 땅에 꽂더니 이곳이 명당이라며 알아듣지 못할 말로 좌가 어떻고 용이 어떻고 하며 옆에 있는 선비에게 말하였다. 두 사람이 돌아간 뒤 농부가 가 보니 그곳은 자기가 나무를 해 오다가 힘이 들 때면 늘 쉬던 자리였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봄날 그 자리에 다시 선비들이 찾아왔는데, 이번에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나무꾼이 하던 일을 멈추고 몰래 숨어 이야기를 들어 보니, 지관이 그 자리를 명당이라고 추천하고 있었다. “천하 대지(大地)입니다. 청룡이 등천하는 형국이니 여의주를 무는 입 자리에 묘를 쓰면 훗날 큰 인물이 날 것입니다.” 전에 왔던 선비가 하인에게 무어라고 말을 하자, 하인은 소나무 한 그루를 캐어 그곳에 심고 산을 내려갔다. 농부는 그 자리가 탐나 심어 놓은 나무를 잡아 당겨 솟구쳐 놓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 날부터 농부는 산에 올라가서 그 소나무를 흔들어 댔다. 그러자 두 달 만에 소나무는 빨갛게 말라 죽어 버렸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마을에 대감이 행차한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대감이 와서 하인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갔다. 전에 심어 놓았던 소나무가 빨갛게 죽은 것을 본 지관은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고, 대감은 난처한 낯빛으로 나무를 바라보며 탄식하였다. “시운이 맞지 않은 탓이로다. 이 대지에 심은 나무가 죽다니…….”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농부는 아들들을 불러 놓고 자기가 죽으면 대감이 버리고 간 자리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하였다. 이튿날 농부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들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그 자리에 아버지를 묻기 위해 인부들을 동원하여 일을 시켰다. 그런데 일을 하던 인부가 갑자기 뛰어 내려와 어서 와 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들들이 그 자리에 가 보니 큰 판석이 깔려 있는데, 불개미 떼가 어찌나 많은지 쓸어도 쓸어도 끝이 없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한 노인이 말하였다. “아무래도 운이 맞지 않으니 다른 곳으로 옮겨야겠네.” 그 뒤 이 자리는 임자가 없어 나무꾼이 쉬어 가는 자리가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나무꾼이 쉬는 명당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명당의 탈취’와 ‘풍수무용론’이다. 이야기의 전반부는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묘지 풍수와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자손의 길흉(吉凶)이 묏자리와 관련이 있다고 하여 일반 서민들까지도 묏자리를 정하는 데 공을 많이 들였다. 지체 높은 대감은 물론 평범한 농부까지도 좋은 묏자리를 차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조선시대에 묘지 풍수가 상당히 대중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의 중반부는 명당 탈취 모티프와 관련이 있다. 명당 탈취는 주로 주거 풍수와 관련하여 여러 설화에 반영되어 있는데, 「나무꾼이 쉬는 명당 이야기」에서는 묘지 풍수와 관련하여 농부가 명당을 탈취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잘 그려 내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반전이 일어나, 농부가 명당인 줄 알고 탈취한 묏자리가 실제로는 묘를 쓸 수 없는 나쁜 땅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는 풍수지리의 허구성을 여실히 고발하는 것으로서 풍수지리 무용론(無用論)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으로는 아무리 좋은 자리를 탈취했다 하더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가 아니면 그것을 누릴 수 없다는 운명론적인 관점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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