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1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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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A Story about The Shrine of A Tutelary Deity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 금한마을 |
집필자 | 박명순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 금한마을에서 서낭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서낭당 이야기」는 서원대학교 호서문화연구소에서 초평면 금곡리에 사는 조명순(여, 69)에게서 채록한 것으로, 1997년 편찬한 『진천의 민속』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예전에는 자식을 못 낳으면 서낭에 떡을 해 가지고 가서 백일기도를 하였다. 그런데 다들 못살던 때라 배가 고픈 사람도 많았다. 어떤 사람 둘이 오늘 저녁 누구네가 서낭에 떡을 해 가지고 가니까 거기 숨어 있다가 그 떡을 먹자고 약속을 하였다. 그리하여 서낭 주위에 들어선 외솔나무 뒤에 가서 몰래 앉아 있는데, 소문대로 떡을 지고 오는 사람이 있었다. 보니까 떡을 서낭 앞에 놓고 절을 한다. 그래서 “절은 하되 떡은 놔두고 가거라. 가져가면 안 된다.” 하고 사람이 아닌 것처럼 말하였다.
떡을 가져온 사람이 절을 하다 말고 놀라서 집으로 도망갔는데 어른들이, “너 시루는 왜 안 가져 왔니? 떡은 왜 안 가져왔니?” 하고 물었다. 그러나 가슴이 후다닥해서 말도 못하고 사랑에 가서 가만히 앉았다가 무서움이 가라앉은 뒤에야 “아유, 서낭에는 다시는 안 가유.” 하였다. 어른들이 영문을 몰라서 “왜 안 가느냐?” 하고 물어 보자 “서낭님이 떡도 못 가져가게 하고 시루도 못 가져가게 해서 무서워서 막 뛰어왔어요.” 하고 말했으나 그럴 리가 없다고 믿어 주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에 어른들이 가보니까 시루도 없고 떡도 없었다. 그래서 “너 떡을 어디로 가져가고 장난하느냐? 어디 갖다 놓고서 느들이 한 거 아니냐?” 하고 물었으나 절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런데 서낭 숲에 숨어 있던 사람들은 떡을 가지고 왔던 사람이 놀라서 도망가자, 떡시루를 가지고 몰래 동네 어느 집 사랑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떡을 나눠먹었다. 그러고는 시루도 감추고 시침을 뚝 떼고 있는데, 떡시루째 잃어버린 집안 어른이 염탐을 하고 다니다 누구누구가 떡을 먹었다더라, 하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누가 떡을 먹고 자랑을 했던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떡시루째 잃어버린 어른 앞에 떡을 먹은 사람들이 불려왔다.
옛날에는 어른들이 아무리 닦달해도 말대꾸를 하면 안 되었다. 그렇다고 서낭 뒤에 숨어 있었다는 소리는 못하고, “어디를 볼일이 있어 갔다 오는데 시루가 있어서 갖다 먹었습니다.” 하였다. 어른들이 듣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냥 넘어갔다.
그 이듬해, 그 어른이 떡을 해가지고 다시 서낭으로 갔다. 그런데 아무리 절을 하고 앉아 있어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식한테 속은 것 같아서 집에 와서 자식들을 앉혀 놓고, “나는 이제 다시는 서낭을 안 갈란다. 느덜이 틀림없이 어떤 저기를 해서 나를 속였으니 나는 다시는 안 간다.” 하고는 정말로 서낭 가는 걸 딱 끊어 버렸다. 그런데 그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그러니까 자식들이 하나같이, “아버님, 서낭에를 안 가니까 아들을 낳잖어유. 서낭에를 끝끝내 다녔으면 자식을 못 봐유.” 했단다.
[모티프 분석]
서낭 신앙은 중국으로부터 전래하였다는 설과 민족 고유의 신앙이 중국에서 건너온 것과 복합되어 유래되었다는 두 가지의 견해가 있는데 여기서는 후자를 따르기로 한다. 민간신앙의 장소인 서낭당은 선왕(仙王)이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이 선왕은 이후 산왕(山王)을 거쳐서 산신(山神)이 되었다. 여기서 선왕과 산신은 본래 다 같이 단군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따라서 서낭당은 과거 오랫동안 존재해 왔던 단군신앙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단군은 삼신에 포함되므로 삼신신앙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에 반해 「서낭당 이야기」는 서낭신을 부정하고 있어, 기존의 서낭당 설화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