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13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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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井戶祭 |
이칭/별칭 | 우물고사,정주제,샘고사,샘굿,천제,용왕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구산리 상구부락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재원 |
성격 | 민간신앙|마을 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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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시기/일시 | 음력 정월 2일 자정~3일 새벽 1시 |
의례장소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구산리 상구부락 |
신당/신체 | 마을 공동우물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구산리 상구부락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정호제(井戶祭)는 덕산읍 구산리 상구부락의 영천(靈泉)이라 불리는 동네 우물에서 정월 2일 밤 12시[子時]부터 3일 새벽 1시 사이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우물고사라고도 하며, 용왕을 신앙 대상으로 하는 마을 공동제(共同祭)로 『진천군지(鎭川郡誌)』에는 정주제(井主祭)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주제는 정호제와 같은 의미로 주민들은 샘고사, 샘굿, 천제(泉祭), 용왕제(龍王祭)라고도 한다. 이들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샘이나 우물에서 물이 잘 나오라고 지내는 일종의 수신제이다.
진천 지역의 정주제로는 덕산읍의 구산리 정주제, 그리고 초평면의 화산리 용왕제와 용정리 정주제 등이 조사되었다. 이들은 모두 마을의 공동우물에서 지내고 있으며, 제일(祭日)은 정월 2일이나 3일 또는 10월 좋은 날로 정한다. 제관(祭官)은 옛날에 무당이 하였을 것으로 추정하나 조선시대 이후로는 마을에서 생기복덕(生起福德)에 맞는 사람으로 하였다. 마을에 따라서는 고령자가 하는 경우도 있으나, 구산리 상구부락에서는 마을 노인회장이 담당하였다.
제관은 정월 초이튿날 헌관(獻官) 3명, 첨작(添酌) 1명, 축관(祝官) 1명 등 총 5명을 선정한다. 그 가운데 아헌관(亞獻官)과 종헌관(終獻官)은 생기복덕과 관계없이 마을 이장, 반장, 노인회장이 맡아서 하나, 초헌관(初獻官)과 축관은 반드시 생기복덕이 맞아야 한다. 제관은 남자에 한하여 연령이 40대 이상인 사람으로 선정하고, 여자는 제사에 참석시키지 않았다. 제관이 되면 바로 우물물로 몸을 깨끗이 하고, ‘외부 출입 금지, 금연, 제사 때까지 앉아 있기’ 등의 금기를 지킨다. 제관을 선출하면 주민들은 마을과 우물을 각각 분담하여 깨끗이 청소하고 우물가에는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린다.
제물은 제관의 아내들이 준비한다. 준비하는 제물들은 돼지머리 2개, 삼색실과(三色實果), 포, 미역, 떡[백설기], 술, 메[제삿밥] 등이다. 돼지머리 1개는 제사용이고 나머지는 동네 음복용이다. 떡은 ‘재수 떡’이라고 하여 동네 사람들이 모두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장만한다. 대추, 밤, 과일 등은 절대로 칼을 대지 않고 깨끗하게 닦아서 그대로 올리며, 포는 통북어를 그냥 올린다. 밥은 반드시 우물물을 떠서 지으며, 제사용 술[祭酒]은 쌀 한 되 서 홉을 준비하여 제삿날 담근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명주실을 제사 음식에 걸쳐 놓기도 한다.
[연원 및 변천]
정호제 행사는 300년 이상 이어져온 전통이 깊은 동제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미신이라고 핍박을 받으면서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그 맥을 이어왔다. 옛날에는 정호제를 지낼 때 60갑자를 따져서 운이 닿는 사람을 제관으로 정하여 제를 올렸다고 하나 오늘날은 마을 노인회장이 한다. 생거진천 화랑제 때에 진천군청으로부터 150만 원을 재현 비용으로 지원받아 생거진천 화랑제의 식전행사로 재현하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동제의 신당이자 신체는 마을 중간에 있는 공동우물이다. 마을의 재난을 예방하고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곳으로 지금도 존재한다.
[절차]
제사는 정월 초이튿날 밤 12시[子時]에 지낸다. ①분향재배(焚香再拜)→ ②강신재배(降神再拜)→ ③초헌(初獻)→ ④독축(讀祝)→ ⑤아헌(亞獻)→ ⑥종헌(終獻)→ ⑦소지(燒紙) 올리기→ ⑧철상(撤床)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소지는 제주인 초헌관이 올리는데 맨 처음 대동소지(大洞燒紙)를 올리고, 동네 대표, 노인회장, 이장, 새마을지도자 순으로 다섯 장을 올린다. 제사를 마치면 제관들이 간단하게 음복을 하고, 그 날 아침에 제관 집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동네 음복을 한다.
[축문]
청주시 금천동 청강서실 이상우 원장이 국역한 축문은 다음과 같다.
이해의 차례는 ○○년 정월 ○○ 15일 ○○에,/ 유학(幼學) ○○○은 오래된 우물의 신령님께 감히 고하나이다./ 오직 샘물을 지키시는 신령님께 고하오니 감응하여 주시옵소서./ 엎드려 원하옵건대, 금년에도 마을의 운수가 대길하고 남녀노소가 모두 평안하고 태평하며, 번창하게 살아가고 가슴 벅찬 상서로운 일들이 되게 하소서./ 농작물과 가축들이 재앙도 없고 해로움도 없게 하며,/ 유행하는 질병들도 동구 밖으로 멀리 몰아내 주소서./ 우리 모두가 신뢰하는 신령님께 말씀을 드리니 저버리지 마시오소서./ 정월 좋은 날에 모두가 정성을 다하여 깨끗한 옷으로 차려 입고/ 삼가 맑은 술을 감히 차려 놓고 제사를 받드오니 원하옵건대 우물의 신령님께옵서는 흠향(歆饗)[제사의 예를 받음] 하시옵소서[維歲次 干支 正月干支朔 十五日干支 幼學 ○○○ 敢昭告于 古井之神/ 惟泉有靈 告之則應 伏願玆歲 洞運大吉 男女老幼 咸安太平 生息蕃滋/ 吉祥是膺 農作畜産 無灾無害 流行疾病 驅出山外 實賴神休 永言不忘/ 元月吉日 齊誠明服 謹以 淸酌 敢陳祀事 尙饗].
[부대행사]
정호제가 끝나면 우물가에 삼색실과·떡·미역 등을 놓아 두는데, 아들을 낳지 못한 여자나 병든 사람이 이것을 먹으면 좋다고 해서 제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제물을 가지고 갔다. 예전에는 백설기 세 조각을 집집마다 나누어 주면서 “올해 이것 먹고 무고하시오.”라며 무병장수를 기원하기도 했다. 또한 정호제를 지낸 후 음력 정월 초사흗날 아침에는 우물이 있는 곳을 돌아다니며 “뚫으시오. 뚫으시오. 물구멍을 뚫으시오.”라고 외치면서 풍물굿을 진행했다고 한다.
[현황]
정호제는 지금도 매년 정월 초이틀 밤 12시[초사흘 0시]에서 초사흘 밤 1시까지 마을의 공동우물에서 지낸다. 마을의 노인회장이 집도하며, 제를 지내기 전에 깨끗이 청소한 우물가에 금줄[왼쪽으로 꼰 새끼줄에 문창호지를 뀀]을 치고 샘가에 황토 흙을 군데군데 뿌린 후 제사상을 차리고 고사를 지낸다. 제사가 끝나면 동네 사람 모두가 음식을 나누어 먹고 헤어진다. 또 생거진천 화랑제에서 식전행사로 정호제를 재현할 때에는 먼저 구산리 우물에서 정호제를 지내고, 다음에 그 물을 떠다가 태령산(胎靈山)에서 제사를 올린 후 축제를 시작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