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7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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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楫 |
영어음역 | Lee Jib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연정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고성(固城). 증조할아버지는 행원(杏園) 이부(李阜)이다.
[활동사항]
이집(李楫)은 어려서부터 부모가 병으로 누워 있으면 옷을 벗지 않고 근심스러운 얼굴로 나날을 보내어 효자로 소문이 났다. 커서는 부모의 대변 맛을 보아 병을 짐작하고, 밤에는 밖에 나가 하늘에 기도하였다. 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죽만 먹고 날마다 묘소에서 슬프게 곡만 하였다. 어떤 사람이 이집에게 죽만 먹지 말고 건강을 생각하라고 하자 울기만 하니, 이야기하던 사람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글씨에도 뛰어났다고 전한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 새반지마을 신도비골 137-1번지에 있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104호로 지정되어 있는 묘소에는 1727년(영조 3)에 세운 비가 남아 있는데, 비문은 이조참판 이재(李縡)가 짓고, 좌부승지지제교(左副承旨知製敎) 이중협(李重協)이 글씨를 썼다. 제전(題篆)은 전라감사 김조택(金祖澤)의 글씨이다. 비는 네모반듯한 받침돌 위에 높이 143㎝, 너비 61㎝, 두께 27㎝의 오석(烏石) 비신을 세우고 정교한 조각 솜씨가 돋보이는 머릿돌을 올린 형태이다.
[상훈과 추모]
1717년(숙종 43)에 군내 유림들이 이집의 효행에 대해 현감에게 글을 올리니, 현감은 관찰사에게 알리고, 관찰사는 다시 조정에 알리어 3년이 지난 1720년(숙종 46) 사헌부지평에 증직되었다. 이후 1725년(영조 1)에 효자정문(孝子旌門)이 내려졌는데, 비문에는 ‘통덕랑증사헌부지평이공집지묘(通德郞贈司憲府持平李公楫之墓)’라고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