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6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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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敎永 |
영어음역 | I Gyoyeong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전호수 |
성격 | 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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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 |
성별 | 남 |
생년 | 1890년(고종 27) |
몰년 | 1976년 |
본관 | 성주 |
[정의]
일제강점기에서 현대의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효자.
[개설]
이교영(李敎永)은 본관이 성주(星州)로, 1890년(고종 27) 외가인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문암리에서 태어나 1976년 세상을 떠났다.
[활동사항]
이교영은 평소 효성이 지극했는데, 42세가 되던 1931년 3월 어머니가 음성의 친정에 갔다가 병석에 누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달려가서 극진히 간호하였다. 한 달 여가 지나도 효험을 보이지 않자, 4월 10일 위급함을 보다 못해 왼손 장지를 끊어 손가락의 피를 마시게 하여 병이 낫도록 하였다. 같은 해 5월 어머니의 병이 재발하자 다시 왼쪽 무명지를 끊어 피를 드렸으나, 끝내 효험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이에 어머니의 시묘살이에 정성을 다하였다. 아버지의 병환에도 정성을 다해 간호하였으며, 돌아가시자 아침·저녁으로 3년간 시묘하였다.
[상훈과 추모]
진천군 내의 유림들이 이교영의 효행을 기려 1956년 10월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 효자비를 세웠다. 현재 효자비는 백곡면 명암리 동암마을 입구 도로변의 왼쪽 산자락 끝에 세워져 있다. 비제는 진천군수 조직상(趙稷相)이 썼으며, 비문은 백곡면장 김진호(金振昊)가 지었다. 1995년 4월 6일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보호비각이 건립되어 그의 효행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