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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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長水黃氏 |
영어의미역 | Jangsu Hwa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
집필자 | 강민식 |
[정의]
황경을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연원]
장수황씨(長水黃氏) 시조 황경(黃瓊)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의 사위로 벼슬이 시중(侍中)에 이르렀다. 황경의 후손으로는 고려 명종 때 전중감(殿中監)을 지내다가 남원(南原)으로 이주하여 세거한 황공유(黃公有), 태학생으로 학문이 뛰어나 『동국명현록(東國名賢錄)』에 기록된 일재(逸齋) 황감평(黃鑑平) 등이 알려져 있으나, 계대(系代)가 불가능하자 후손들이 조선시대 이조참의에 증직된 황석부(黃石富)를 1대조로 하고 선대의 세거지인 장수를 본관으로 삼았다.
장수황씨는 조선시대에 들어 문과 급제자 40명, 상신(相臣) 2명, 대제학 2명, 호당(湖堂) 2명, 청백리 1명, 공신 6명을 배출하였는데, 그중 특히 조선 초기 문신인 황희(黃喜)가 유명하다.
황희는 고려 말 창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학관(成均館學官)이 되었고, 고려가 망하자 한때 두문동에 은거하다가 이성계(李成桂)의 간청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이후 정승의 자리에 24년, 영의정으로만 18년 동안 재직하면서 많은 치적을 남겼으며 청백리에 녹선(錄選)되었다.
황희의 아들들도 관직에 몸을 담아 호안공(胡安公) 황치신(黃致身)은 세조 때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지냈고, 셋째 아들 열성공(烈成公) 황수신(黃守身)은 1455년(세조 1) 좌익공신(佐翼功臣)에 올라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다. 그 밖에 유명 인물로는 황맹헌(黃孟獻)·황여헌(黃汝獻)·황효헌(黃孝獻) 형제가 있다.
[현황]
2000년 인구 조사 통계에 따르면 진천군에 거주하고 있는 장수황씨는 총 43가구 148명이었으며, 2009년 현재 40여 가구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