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5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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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許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금곡리 |
집필자 | 강민식 |
세거지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금곡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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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금곡리 |
입향시기/연도 | 조선 후기 |
성씨시조 | 허염 |
입향시조 | 허속|허기 |
[정의]
허염을 시조로 하고, 허속·허기 형제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연원]
시조 허염(許琰)은 수로왕비인 보주태후(普州太后) 35세손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 문종 때 태어나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오르고 가락군(駕洛君)에 봉해졌다. 김해허씨(金海許氏)는 허씨 중에서 종통(宗統)으로, 가락이 신라에 의해 망함으로써 왕손들이 각 지방에 유리되었으나 종파는 김해에 머물러 있었다. 허염도 김해에 거주하였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김해로 하였다.
김해허씨는 고려시대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문과 급제자 16명, 호당 1명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고려시대 허유전(許有全)과 조선시대 허백기(許伯琦) 등을 들 수 있다. 근대 인물로는 한말에 일본 정부로부터 칙임관(勅任官) 2등에 임명되었으나 거절하고,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사한 왕산(旺山) 허위(許蔿)가 있다.
[입향경위]
조선 영조 때 허속(許鋉)·허기(許琪) 형제가 진천군 광혜원면 금곡리 금천마을로 이주하면서 진천군에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현황]
200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진천군 관내에 거주하는 김해허씨는 47가구 131명으로 나타났다. 광혜원면 금곡리 금천마을 50여 가구 중 김해허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다. 진천군 광혜원면 금곡리 금천마을은 조선 숙종 때 정승(政丞)을 지낸 허적(許積)이 출생한 곳이다. 이곳에 별장(別莊)을 마련하고 우물을 만들었는데, 돌 대신 쇠를 녹여서 만들었다 하여 쇠 ‘금(金)’자와 샘 ‘천(泉)’자를 써서 ‘금천’이라 하고 쇠물이라 불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