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5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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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蔚珍林氏 |
영어의미역 | Uljin 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연담리 |
집필자 | 강민식 |
세거지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연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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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시조 | 임팔급(林八及) |
[정의]
임팔급을 도시조로 하고 임우를 중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연원]
도시조 임팔급(林八及)은 당나라에서 용도각한림학사·행병부상서를 지내다가 참소를 당하자 동료들과 함께 신라로 망명하여 평택현 용포리에 정착하였다. 적병이 침범하자 의병을 일으켜 이를 격파하였고, 그 공으로 평택군(平澤君)에 봉해졌다.
중시조 임우(林祐)는 부안임씨(扶安林氏)의 1대조 임계미(林季美)의 현손인 임중간(林仲幹)의 큰아들 임종비(林宗疪)의 아들이다. 1214년(고종 1) 문과에 급제한 뒤 벼슬이 좌윤에 이르렀다.
거란과 몽골이 침입했을 때 여러 차례 출정하여 공을 세우고 중부상서(中部尙書)가 되었고, 그 후 몽골군이 개경에 침입하여 왕이 파천할 때 호종한 공으로 울릉군(蔚陵君)에 봉해졌다. 이에 후손들이 울진을 본관으로 삼았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울진임씨는 문과 급제자 6명을 배출하였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임익빈(林益彬)이 있다. 임익빈은 숙종 때 사마시를 거쳐 평안도 별시 문과에 장원하였고, 영조 때 이조좌랑을 거쳐 북청부사(北靑府使)에 임명되었으나 부임 전에 무고를 받아 파직되었다.
[현황]
2000년 인구 조사 통계에 따르면 진천에 세거하는 울진임씨는 총 40가구 97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