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4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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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玉城里戰蹟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547-2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양기석 |
성격 | 항일 전적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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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1907년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547-2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의병장 한봉수의 항일 전적지.
[개설]
한봉수(韓鳳洙)[1883~1972]는 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 세교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7월부터 1910년까지 충청도와 강원도 등지에서 34회에 걸쳐 일본군과 싸워 승리를 거둔 청주 지역의 대표적인 의병장의 한 사람이다. 1910년 한봉수는 중국으로 망명하려다 서울 남대문역에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같은 해 8월 17일 이른바 합방대사령으로 사면되었다. 3·1운동 때에는 청주·괴산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지휘하다 체포되어 2년 동안 투옥되었다. 1963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국민장이 수여되었으며, 1972년 12월 향년 90세로 세상을 떠났다.
[변천]
옥성리 전적지(玉城里戰蹟地)는 한봉수가 1907년 일본 헌병 세 명을 습격하여 그 중 시마자키[島崎善治]를 사살한 곳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진천 지역에서 항일 의병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당시 일제는 이곳에 한봉수로부터 죽임을 당한 시마자키를 기리는 순직비를 세웠다. 1977년 6월 충청북도와 진천군에서는 한봉수의 항일 의거 활동을 기리기 위해 높이 180㎝, 폭 60㎝, 두께 30㎝인 의병장 한봉수 의거비(義兵將韓鳳洙義擧碑)를 세웠다.
[위치]
옥성리 전적지는 청주-진천 간 국도 17호선 상의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오미마을 앞 바위배기라고 불리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옥성리 전적지에는 1977년에 세워진 의병장 한봉수 의거비와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해 세워진 옥성리 일본헌병도기순직비(玉城里日本憲兵島崎殉職碑)가 함께 보존되어 있어 호국을 위한 산 교육장으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