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463 |
---|---|
한자 | 台洛院址 |
이칭/별칭 | 창리 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태락리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양기석 |
성격 | 원 터 |
---|---|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고려시대~조선시대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태락리 다랭이마을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태락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의 원 터.
[개설]
태락원 터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진천현 관할의 옛 원(院)이 있던 자리이다. 원은 고려·조선시대에 역과 역 사이에 두어 공무를 보는 관리가 묵던 공공 여관이다. 마을 노인의 말에 의하면 “옛날 장사꾼들이 청주장을 보고, 진천장으로 가다가 묵어가던 곳이었으며, 주막이 있었다.”고 한다. 이 원은 청주에서 진천으로 가는 상인들이나 과거를 보러 한양 가는 선비들이 교통의 요지인 태랑역을 지나면서 이용했던 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역원 아래쪽 집이 창고 터였다고 하는데, 이런 연고로 인해 다랭이마을이 ‘창리’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변천]
태락원은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진천현 관할의 원으로서, 지금의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태락리 다랭이마을의 수령 700년 정도 되는 보호수 주변에 설치되어 있었으며, 그 아래쪽 집이 창고 터였다고 한다. 태락원에는 길 맞은편 역리마을에 있던 태랑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묵어가던 여인숙이나 주막 등이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위치]
태락원 터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태락리 역리마을 맞은편으로, 역리마을은 문백면에서 잣고개를 넘어 진천읍으로 가는 국도 17호선 상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현황]
현재 국도 17호선 대신 고가로 세워진 청주-진천-서울로 가는 4차선 도로가 다랭이마을 뒤편 원덕리와 진천읍을 곧바로 관통하면서 태락리 일대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국도 17호선 맞은편에는 태락리 역리마을이 있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태랑역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이 마을 한 가운데에는 수령 700년 정도가 되는 태락리 보호수가 있고, 이곳 뒷산자락 끝에는 조선 후기 한성부좌윤을 지낸 박필정(朴弼正)[1684~1756]의 묘소와 박필정 신도비가 있다.
[의의와 평가]
태락원 터는 광혜원면의 동주원 터, 초평면의 영주원 등과 함께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원 제도의 모습과 변화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