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4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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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岩鄕賢祠址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산 1-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양기석 |
성격 | 사당 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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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1825년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산 1-2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터.
[개설]
봉암 향현사(鄕賢祠)는 조선 후기 진천의 대표적인 처사인 채지홍(蔡之洪)[1683~1741]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채지홍은 본관이 인천으로, 호는 삼환재(三患齋) 또는 봉암(鳳岩)이다. 16세 때에 송시열의 제자인 수암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이 되어 문장과 성리학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당시 당파 싸움에 혐오를 느껴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인 봉암리에 봉암정사(鳳岩精舍)를 지어 놓고 일평생을 후진 교육에 힘썼다. 그는 조선 후기 성리학계의 논쟁인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이 인물이성론(人物異性論)을 주장하자 이간(李柬)의 인물동성론(人物同性論)을 지지하였다. 저서로 『봉암집(鳳岩集)』, 『성리관규(性理管窺)』, 『천문집(天文集)』 등 10여 권이 있다.
[변천]
봉암 향현사는 1825년 지방 유림들이 채지홍의 위패를 봉안하여 사당 3칸, 원생 10명, 모속(募屬) 15명의 규모로 건립하였으나,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위치]
봉암 향현사 터는 문백면 봉죽리 봉암마을 뒷산 자락 끝 평지에 위치해 있다.
[현황]
현재 봉암 향현사 터 중앙에는 조그마한 민묘 1기가 자리하고 있으며, 주변에서 주초석과 기와편 등이 채집되고 있다. 봉암마을에는 채지홍의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봉암 향현사는 조선 후기 호서 지역의 성리학 계보와 사상, 진천 지역의 학문 활동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