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4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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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門里寺址 |
이칭/별칭 | 대문리사지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대문리 산 2-10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상일 |
성격 | 절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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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고려시대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대문리 산 2-10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대문리 만노산(萬弩山)에 있는 고려에서 조선 전기 절터.
[변천]
문헌 기록이나 명문기와 등 절의 이름을 밝혀 주는 자료가 없어 절터의 유래와 연혁은 알 수 없고, 빈대가 많아 절이 망하였다는 전설만이 전해 온다. 주변에서 고려에서 조선 전기에 이르는 어골문(魚骨文) 기와편이 발견되어 시기를 추정할 뿐이다. 현재 칡넝쿨 등 수풀이 우거지고 절터에 이르는 길도 없어 절터의 위치를 확인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위치]
대문리 절터는 백곡면 대문리 하수문마을 남쪽에 있는 만노산의 북동쪽, 일명 절골이라 불리는 좁은 계곡의 산정부에 가까운 위치에 동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주변의 산세가 무척이나 험준한데다 절터의 면적이 661.16㎡ 정도에 불과한 좁은 지역이어서 작은 암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 동쪽만이 계곡으로 앞이 조금 트였을 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일제강점기인 1942년에 간행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대문리 절터가 대문리 남쪽 계곡에 있는데, 길이 20간, 높이 약 2간의 석벽과 초석이 현존하고 와편이 산재해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충청북도에서 간행한 『사지』에는 경기도 안성 땅으로 통하는 진천의 대표적인 고갯길이었던 옛 대문영로에 있는 대규모의 가람 터인 것으로 소개하고 있으나, 1995년 12월 청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학술조사 결과 향화가 끊긴 지 오래된 작은 암자 터로 확인되었다.
[현황]
현재 칡넝쿨 등 수풀이 우거지고 절터에 이르는 길도 없어 위치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실정으로, 대문리 절터 동쪽 입구에 석축의 일부가 거의 무너진 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