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3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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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葛月里堡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산 51-1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박상일 |
성격 | 성곽|산성|토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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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삼국시대 |
관련인물 | 홍계남(洪季男) |
높이 | 3.5~5m |
둘레 | 약 100m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산 51-1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뒷산에 있는 삼국시대 보루 터.
[건립경위]
삼국시대에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보루로 추정되며, 남쪽의 엽둔재를 지키는 초소와 같다. 임진왜란 때 안성의 선비 홍계남(洪季男)이 의병을 이끌고 왜군을 막았던 곳이라 전해온다.
[위치]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5리 엽둔재의 북쪽 산봉우리에 있다.
[형태]
해발 371.7m의 봉우리 외곽을 테를 두르듯 삭토하여 토단 모양의 보루를 구축하였다. 가장 높은 곳은 직경 25m의 타원형으로 되어 있고, 3m쯤 아래 모자의 테처럼 된 부분은 너비가 3.5~5m가 된다. 전체 둘레가 100m에 불과한 작은 보루이다.
[현황]
갈월리 보루에 대한 학술적인 조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현재 갈월리 일대에 산성이 있었다는 흔적조차 거의 없다.
[의의와 평가]
갈월리 보루는 삼국시대에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로부터 변방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쌓은 보루로 추정되나 고문헌 기록이 없다. 1977년에 간행된 『문화유적총람』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안성의 선비 홍계남이 의병 수천 명을 이끌고 이 보루를 중심으로 싸워 왜군을 대파하여 부근 사람들이 편안히 지낸다는 것을 조정에서 듣고, 홍계남을 수원부사로 임명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소개되었다. 학술적인 조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현재 인근 주민들도 갈월리에 산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