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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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신대(新垈)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예경희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유래]
새로 생긴 마을이므로 새터 또는 신대(新垈)라 하였다.
[자연환경]
성석리는 백곡천(栢谷川) 유역의 퇴적 평야에 자리 잡고 있다. 새터에서 서쪽으로 300m 떨어진 곳에 소의 길마처럼 생긴 질매기들이 펼쳐져 있다.
[현황]
2008년 12월 3l일 현재 새터에는 총 75가구에 193명[남자 100명, 여자 9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새터는 벌터에서 400m 떨어져 있는 마을로, 군도 11호선과 면도 105호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교육 기관으로 진천중학교와 진천여자중학교가 있다. 1983년 진천중학교 진입로 포장, 1993년 성석우회도로 확장 및 포장, 지석경로당 건립, 1995년 새터마을자랑비 건립 등이 이루어졌다. 2005년 11월 17일에는 군비 5000만 원, 마을 기금 1500만 원을 들여 224.79㎡의 대지에 건평 82.65㎡의 단층 슬래브 건물인 새터경로당을 완공하였다.
새터마을자랑비 앞면에는 “웃어른을 공경하고 서로 돕고 살자, 이웃 간에 상부상조하고 화목하게 지내자, 마을을 청결하게 하고 아름답게 가꾸자.”라는 향약이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마을의 기원과 역사가 새겨져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새터는 진천읍 북쪽 2㎞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뒤로는 병풍 같은 매봉산이 있고 앞으로는 넓은 들이 있어 예로부터 양식이 풍부하고 장수하는 마을로 자손 대대로 풍년 농사를 지으며 웃어른을 공경하고 인심 또한 후덕한 살기 좋은 마을로 알려져 왔다. 우리 마을은 세종 26년(1444) 음력 3월 1일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에 너무 골몰하시어 안질이 생겨 치료 차 초정으로 가시던 중 이곳 냇가(진천중학교 앞으로 물이 흘렀다고 함)에서 하룻밤을 쉬어 가신 후 성평이라 하였으며, 물줄기의 변동으로 현재의 위치로 이거하였고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터라고 부르고 있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의 폐합에 따라 성평과 지석의 이름을 따서 성석리라 하였고, 진천읍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 마을의 자손들은 어느 곳에 가든 인정받는 인물이 되어 동민들이 하나가 되어 더욱 잘사는 마을로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이 비를 세우는 바이다. 1995년 3월 10일 새터 주민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