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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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宗敎 |
영어의미역 | New Religion |
분야 | 종교/신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
시대 | 근대/개항기,현대/현대 |
집필자 | 정제우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흥 종교.
[개설]
한국에서 종교는 무속 등 민간 신앙으로 부터 시작하여 유교·불교·도교·천주교 그리고 근대의 개신교와 민족 신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신종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기성 제도 종교와 비교하여 성립 시기가 오래지 않은 새로운 종교를 말한다. 신종교의 발생 원인으로는 아노미(anomie), 상대적 박탈감, 전통적 가치관 또는 기성 제도 종교의 설득력 상실, 문화 격변에 따른 충격 등을 들 수 있다.
한국에서는 조선 말기에 이르러 안으로는 정치·사회가 부패하고 밖으로는 외세의 위협이 심화되었고 이것이 혼란으로 이어지면서 현실에 대한 불안과 위기의식이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유교·불교·도교 등 기존 교리를 종합 또는 보완한 신종교가 출현하여 민중의 염원을 흡수하고 좌절을 극복하려 하였다. 이와 같이 한국의 신종교는 주로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사이의 사회 변혁기에 외세를 배척하는 새로운 종교 운동으로 대두하여 조직화한 민족 종교로서 지역 문화 이해와 문명 간 대화 연구의 귀중한 자산이 되기도 한다.
당시에 출현한 한국의 대표적인 신종교로는 1860년에 최제우(崔濟愚)가 제창한 동학, 즉 천도교를 비롯하여 1909년에 나철(羅喆)·정훈모(鄭勳謨)가 창설한 대종교, 강일순의 증산계(甑山系) 등이 있다. 모두 민족 수난기에 민족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민족 종교 운동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 외에 박중빈의 원불교·김항(金恒)의 정역계(正易系)·단군계(檀君系)·성덕도(聖德道) 등의 신종교도 있다. 이들은 사상적으로 기존 질서에 대한 부정과 함께 종말론 등을 강조하였다.
[천도교]
진천 지역에서 처음 동학을 수용한 사람은 3대 교주 시대 신계리의 서상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1892년 동학 북접 손병희가 조정의 탄압이 극심하여 덕산면 방동(房洞)[현재의 산수리]에 잠시 와서 삼칠기도를 3회나 계속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동학농민전쟁기에는 진천 일대의 대접주로 허문숙이 있었으며 광혜원에는 충주대접주 신재연이 지휘하는 1만 명의 동학농민군이 집결하고 있었다. 또한 진천 출신 박명숙은 1894년 11월의 세성산전투에 참여한 대표적 인물이었다.
1905년 제3대 교주였던 손병희가 동학을 천도교라 개칭하였다. 손병희는 1919년의 3·1운동에서 33인의 민족 대표 중의 한 사람으로 참가하여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15일의 진천 3·1운동 때에는 천도교인 박주철과 최창기 등이 봉화시위 도중 일제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천도교는 일제강점기에는 탄압이 심하여 교세가 약화되었다가 광복 후에야 교세가 회복되었다.
한편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손병희의 미망인 주옥경이 진천으로 내려와 3개월 동안 교인들의 가정을 순회하면서 피난하였다. 그리고 1970년대까지만 해도 진천읍을 비롯하여 덕산면 방동과 합목리, 백곡면 성대리 등에 교구의 교당이 있었고 20여 호에 100여 명 정도의 신도가 있었으며 백곡교구와 덕산교구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백곡교구는 백곡면 성대리 949번지에 있으며 신도 수는 정영재 등 20여 명이다. 덕산교구는 덕산면 합목리 216번지에 있으며 신도 수는 염정철 등 20여 명이다.
[원불교]
원불교는 1916년 4월 박중빈이 창립한 신종교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를 주창하고 미신 타파, 문맹 퇴치, 저축 조합 운동 등을 통해 혼란한 시국 속에 희미해져 가는 민족혼을 일깨우고 땅에 떨어진 인륜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자 하였다. 진천 지역의 원불교 전파는 2001년 1월 10일 조윤덕 교무에 의해서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진천교당과 진천원광은혜원이 설립되어 포교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진천교당은 대지 면적 671㎡에 건물 면적 231㎡로 진천읍 교성리 286번지[교성3길 9]에 있으며 신도 수는 이성진 3대 교무 등 50여 명이다. 진천원광은혜원은 대지 면적 6,612㎡, 건물 면적 3,306㎡으로 문백면 태락리 459번지에 있으며 신도 수는 이명선 등 300여 명이다.
[성덕도]
성덕도는 1952년 6월 대구에서 성덕도교화원으로 창설되어 1960년 10월에 사단 법인 성덕도교화원으로 인가되었으며 1967년 3월에는 성덕도로 이름을 바꾸었다. 성덕도는 자성·반성·성덕명심덕경(聖德明心德經)을 중심으로 수심양성(修心養性)을 하고, 밝고 참된 정신으로 도덕 사회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함으로써 인류의 지상 목표인 자유와 평화의 복지 사회 건설에 기여하고자 한다.
진천 지역에 성덕도가 전파된 것은 1950년대였으며 현재는 성덕도교화원과 이월성덕도교화원을 중심으로 포교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성덕도교화원은 진천읍 교성리 17-8번지[남산8길 30]에 있으며 도인 수는 교화사 이장욱 등 20여 명이다. 이월성덕도교화원은 이월면 사곡리에 있으며 도인 수는 교화사 박복이 등 20여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