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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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분파. 안산시에 개신교가 언제 전래되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생활권과 문화권이 같은 주변 지역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안산시와 가까운 시흥시와 안양시에 개신교가 전해진 것은 1895년 감리교회인 덕고개교회[안양시 호계1동]와 무지내교회[시흥시 무지내동]가 세워짐으로써 비롯되었다.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걸쳐 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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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에 있는 자연마을. 고주물은 밀양박씨가 처음 터를 잡은 마을로, 안산시 화정영어마을[옛 화정초등학교] 앞에 있는 우물이 풍수로 보아 매화꽃이 떨어지는 형국[梅花落地形]이고, 오랜 옛날 이곳에서 선화(仙花)라는 꽃이 피어서 꽃우물이라 했으며, 또한 매화꽃이 피었다 하여 꽃우물이라 했다고 한다. 그 후 마을 이름도 우물 이름을 따 꽃우물이라 하였는데, 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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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물에는 마을 우물이 여러 곳에 있었다고 전한다. 그 중에는 현재도 마을 사람들이 사용하는 우물도 있지만, 옛 모습을 잃어버렸거나 시나브로 사라진 우물도 여럿 된다. 바로 그 사라진 우물 이야기를 통해 고주물이 얼마나 변했는지 알아보자. 고주물을 대표하는 우물은 역시 꽃우물이다. 이 꽃우물에 얽힌 이야기는 사연을 전하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선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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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우리나라의 자연마을 하면 가정 먼저 떠오르는 것이 마을 한가운데나 동구 밖을 지키는 우람한 나무가 아닐까 싶다. 나무들은 무더운 한 여름 우거진 그늘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이 땀을 닦고 쉬어가는 곳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알찬 열매를 맺어 풍성함을 더해 주기도 했다. 고주물 역시 마을 여기저기에 수백 년도 더 된 나무들이 듬직하게 선 채 마을 사람들의 쉼터로서, 또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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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물의 마을 회관에서 소목고개로 가다가 수은행나무에 다다르기 전 왼쪽으로 보면 자그마한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가 달맞이고개이다. 달맞이고개는 옛날부터 마을에서 대보름날 달맞이 행사를 하던 장소이자 한 해 농사를 점치던 중요한 장소였다. 매년 새해 대보름날 저녁이면 나이 지긋한 어른들을 중심으로 달맞이고개에 모여든 마을 사람들은 마을 회관 맞은편 산봉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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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부동에서 화정8교를 지나 화정동으로 들어가자마자 왼쪽으로 들어가면 고주물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이곳으로 계속 가다보면 오른쪽으로는 너른 논이 펼쳐져 있고, 왼쪽으로는 낮은 산이 있다. 그리고 조금 더 가면 금방 고주물이 보인다. 마을에 다다르면 제일 먼저 ‘꽃우물마을’이란 마을 표석이 보인다. 삼거리에 있는 이 표석에서 왼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고주물마을에서 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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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동과 선부동의 경계 지점에 화정8교가 있다. 이곳은 화정동으로 들어오는 입구이다. 이곳에서 시화호가 있는 서해안까지는 아주 먼 거리지만 옛날에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이곳의 옛 지명은 ‘쑥께’라고 하는데, 이 지명에 대한 유래는 두 가지가 전한다. 먼저 ‘쑥께’라는 말은 고주물 초입을 가리키는 말로서, 이곳에 쑥이 많다고 해서 ‘쑥께’라고 불렸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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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동은 원래 조선시대 안산군 잉화면 화정·광곡리(廣谷里) 지역이었으나,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 시흥군 수암면 화정리가 되었다. 그 후 1989년 시흥군 소래읍과 수암면, 군자면을 합하여 시흥시로 승격할 때 화정동이 되었다. 이 후 화정동은 1991년 연성출장소에 편입되었는데, 같은 해 연성출장소는 연성동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1995년 화정동 일부인 너빌과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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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교회 박인환 목사는 1957년에 강원도에서 태어나 1979년 감리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987년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그 후 육군 군목과 필동교회 부담임 목사를 역임하고, 회천교회 개척 등 많은 활동을 하다가 1989년 9월에 화정교회 담임 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박인환 목사가 화정교회로 부임할 당시 안산 지역은 한창 개발붐이 일어 도로가 생기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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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동 너빌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산제사를 올린다. 산제사는 일 년에 두 번 지내는데, 곧 정월 초3일 산제와 음력 7월 1일 제사가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산신제를 지내는 시기는 마을마다 일정하지 않지만 새해를 맞이해 초3일에서 보름 사이에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너빌 마을 에서는 음력 7월 초하루에 산 중턱에 있는 샘에서 제(祭)를 지낸다. 아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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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동에 있는 꽃우물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화정동 터줏대감 김연권, 김광권 두 어른이 들려주는 화정동 고주물마을의 꽃우물[花井]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지면서 안산시 선부동 뒤에 있는 골짜기에서 오색찬란한 무지개가 솟아올랐다. 그러고는 다음 순간 하늘이 밝아지며 무지개가 서려 있던 자리에 옥수(玉水)같이 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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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물의 산 역사 박순기 장로는 고주물 마을의 밀양박씨 입향조 박관회의 후손이자, 박거겸 장군의 18세 후손이다. 어려서는 동네 서당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친구인 정완종의 아버지가 훈장이었다. 그리고 조금 후에는 너빌에 살던 박용호 어른이 훈장으로 와서 수학하였다. 당시 같은 또래 30여 명이 거의 서당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박순기 장로는 집안 형편이 어렵고 가난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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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물에서 시흥시 능곡리의 능골마을로 넘어가는 곳에 있는 고개가 ‘소목고개’ 또는 ‘서모고개’라고 불리는 곳이다. 지금은 고개 너머로 시흥시 능곡지구에 대규모 택지개발로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있어 사람들이 거의 이용하지 않지만 옛날에는 제법 큰 길로 통했다. 소목고개라고 불리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이 고개가 지금은 비록 시흥시로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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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처음 생긴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화정동 너빌 마을에서는 조상들의 충효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평상시에는 시제를 지낼 때 후손들에게 선조들의 얼과 정신에 대해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고 그 뜻을 이어가기 위해 작은 마을이지만 근대 이전에는 여러 개의 서당을 운영하면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애썼다. 조선시대에 서당은 가르침과 배움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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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속하는 법정동. 화정리에서 화정동이 되었다. 화정리는 자연마을인 고주물이 풍수지리로 보아 매화꽃이 떨어지는 형국으로, 예전 이곳에 있던 큰 우물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 하여 꽃우물[花井]이라 하였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에 안산군 잉화면 화정리·광곡리 지역으로 1914년 시흥군 수암면 화정리가 되었다. 1989년 시흥시 화정동이 되었고,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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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동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김녕김씨와 밀양박씨 집안사람들이다. 두 집안은 비슷한 시기에 입향했는데, 먼저 뿌리 내리고 산 사람은 김녕김씨(金寧金氏) 가문의 김충주(金忠柱)로, 조선 전기의 일이다. 김충주의 자는 광보(狂甫), 호는 탄옹(炭翁)이다. 공조판서 김문기(金文起)의 손자로, 아버지는 거창현감을 지낸 김현석(金玄錫)이며, 어머니는 동복오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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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화정동도 마을 청년들이 도시로 떠나가면서 청년들의 수가 많이 줄었다. 그들 나름대로는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났지만 부모님과 고향에서의 추억은 오랜 타지 생활에도 잊히지 않는다. 오히려 타지에 살면서 나름대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게 되고, 고향과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너빌이 고향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광곡청년회’라는 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