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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A010202
지역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신대광

화정동은 원래 조선시대 안산군 잉화면 화정·광곡리(廣谷里) 지역이었으나,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 시흥군 수암면 화정리가 되었다.

그 후 1989년 시흥군 소래읍과 수암면, 군자면을 합하여 시흥시로 승격할 때 화정동이 되었다. 이 후 화정동은 1991년 연성출장소에 편입되었는데, 같은 해 연성출장소는 연성동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1995년 화정동 일부인 너빌고주물 지역이 안산시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북쪽에 마하산[마산]이 있어 마치 마산이 두 팔을 벌려 마을을 포근히 끌어안은 모양을 하고 있는 화정동은 원래 너빌, 고주물, 가래울 이렇게 3 개 마을이 있었다. 그런데 고주물가래울은 비록 산을 사이에 두고 나누어져 있기는 했으나 얼마 전까지도 서로 한 마을로 여기고 살아왔다. 실제로 옛날 마을의 이장이나 지금의 통장도 한 사람이 그 역할을 다 했으니, 분명 두 마을 사람들 모두 서로를 한 마을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지난 1995년 가래울에 사는 주민들이 생활 여건도 그렇고 시장을 다니는 것도 그렇고 시흥시 쪽이 훨씬 편리하다고 주장하며, 안산시로 소속되기를 원치 않아 시흥시로 편입 되었다. 두 마을이 산을 경계로 시흥시와 안산시 지역으로 나누어 지게 된 것이다. 그 후 시흥시 능곡지구가 대규모 택지개발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가래울 지역은 옛 마을의 정취를 잃고 말았다.

2008년 현재 화정동너빌 지역과 고주물 지역으로 크게 구분되는데, 마을이 생긴 이래 너빌 지역은 김녕김씨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으며, 고주물 지역은 김녕김씨밀양박씨 두 성씨가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다.

선부동 달미에서 화정8교를 지나 시흥시 광석동 물왕저수지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화정큰길을 이용해야 한다.

이 큰길을 따라 북쪽으로 계속 지나다 보면 오른쪽 마을이 너빌이고 왼쪽이 고주물이다. 자연스럽게 두 마을의 경계가 되어 버린 화정큰길은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에 생겼다. 당시 통장 일을 맡아 봤던 김장연 씨는, “그때 이 도로가 생길 줄 알았으면 막았을 겁니다.” 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 당시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도로가 생기는 것을 몰랐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마을에 도로가 생겼다고 당시 상황을 들려 주었다. 그런데 마을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는화정큰길은 높이가 주변의 논보다 높아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두 마을의 담장처럼 보인다.

도로가 마을을 나누어 놓은 것이다.

너빌 지역은 아직도 옛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고 있다. 정월 초사흘에 마하산의 정상 아래 우물에서 산제사를 지내며, 7월 초엿새날에는 우물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문중의 시제를 지금도 변함없이 지내고 있다. 또한 고송정오정각이 마을에 있어 김녕김씨 집안의 내력과 그 후손들이 조상들의 뜻을 기억하며 살고 있다.

반면에 일찍이 기독교 문화를 접한 고주물 지역은 1904년 화정교회가 세워지면서 일찍부터 기독교 문화가 뿌리내려 지금은 주민의 약 70~80%가 기독교인이다.

천주교인을 제외하면 마을의 비기독교인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렇게 너빌 지역은 유교적 전통이 깊게 남아 있는 마을이 되었고, 고주물 지역은 기독교 문화가 자리 잡은 마을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마을 사이의 교류가 뜸해지며 너빌 지역에서 지내는 산제사에 고주물 사람들은 참여하지 않고 있다. 두 마을이 심정적으로 더 멀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 마을을 나누듯 큰 도로가 생겨 주민들의 왕래마저 끊어 놓았으니, 터놓고 말은 안 해도 두 마을 사람들의 아쉬움과 서운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란다.

[정보제공]

  • •  김장연(남, 1945년생, 화정동 거주, 화정동 전 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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