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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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에서 생산되는 특산작물. 대부 지역에 포도가 처음 들어온 것은 6·25전쟁 직후인 1954년으로 북4리[10통]의 정경선이 캠벨 50여 주를 심은 것이 시작이다. 이때에는 자가 소비 수준에 머물렀으나, 20년 뒤인 1977년 동리 김봉환[김진구 부친], 김한규 등이 포도 재배를 시작했다. 본격적인 포도 재배가 시작된 것은 1980년 구광회 농촌지도사의 지도로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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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포도 재배지는 연평균 기온이 7~17℃가 가장 알맞고 4~5월의 평균 기온이 13℃, 7~9월의 평균 기온이 18℃, 연 강우량이 1,000~1,200㎜이면 적당하다. 대부도는 8월 평균기온이 24℃이며, 연 강우량은 1,210㎜로서 포도 농사에 가장 알맞은 기후를 가지고 있다. 포도는 토질에 대한 적응성이 강하지만 품종에 따라 적합한 땅이 다르다. 미국종은 양토나 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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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물이 귀하고 땅이 척박하여 농사를 짓고 살기에는 부적합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부도의 경우는 다르다. 섬에 맑은 물이 풍부하고 토지도 농사짓기에 좋은 점토질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예부터 대부도 사람들은 농사를 주업으로 하며 어업과 갯벌 일을 부업으로 삼고 살아왔다. 그러나 산업화가 진전됨에 따라 농업으로 인한 이익이 점차 줄어들면서 농사를 통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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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 마을 사람들이 포도농사로 얻는 농가 수입은 적게는 연 2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에 이른다. 대부포도가 다른 지역 포도보다 경쟁력이 있는 이유는 짙은 향기와 달콤한 맛도 중요하지만 다른 지역보다 늦게 출하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홍성웅 씨에 의하면, 종현마을 포도는 크게 네 가지 형태로 출하된다고 한다. 첫째는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포도로 가장 먼저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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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 마을은 예부터 배를 타고 나가는 어업 활동은 크게 하지 않았다. 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갯벌에서 어패류를 채취하는 것이 그 다음 일이었다. 그리고 물고기는 어선보다는 주로 돌살이나 건강망, 그물끌기 등의 방법으로 잡았다고 한다. 돌살은 살 또는 독살이라고도 하는데, 인간이 만들어낸 고기잡이 방법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돌살은 충청남도 해역과 전라도 해역에서는 ‘독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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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옹에 대해 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분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릴 적부터 예능에 소질이 있던 그는 어깨너머로 어른들의 소리를 배워서, 소리를 하던 어른들이 나이가 들어 하나 둘 세상을 떠나자 그 뒤를 잇게 되었다. 또한 어린 나이에도 동네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경을 읽어주러 다녔다. 예전에 종현마을에서는 환자가 생기면 각성받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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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디에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음식점 중의 하나가 ‘바지락칼국수’집으로, 조개가 나는 서해안과 남해안뿐만 아니라 대도시의 길거리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음식점이 되었다. 이 바지락 칼국수가 처음 시작된 곳이 바로 대부도이다. 시화방조제를 지나 대부도에 들어오면 방아머리를 지나면서 음식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대부분의 집들이 바지락 칼국수집이다. 종현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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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방조제 완공으로 육지와 연결된 후 대부도는 섬으로 들어오는 교통이 편리해져 관광객들의 방문이 점점 늘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도 관광객들을 만족시킬 만한 프로그램이 개발되지 않아서 대부분은 갯벌을 한 바퀴 돌고 바지락 칼국수를 한 그릇 먹고 나올 뿐이었다. 종현 마을 역시 시화방조제를 지나 대부도로 들어오는 입구에 자리 잡고 있지만, 관광객들의 증가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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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옹은 1936년 11월 12일 아버지 김윤지와 어머니 강순장 사이의 8남매 중 위로 누나 하나와 형 둘이 있는 넷째로 태어났다. 호적상 이름은 김복동인데 마을에 동명이인이 있어 동네에서는 아명인 김선용이라고 해야 쉽게 통한다. 형제들은 성장하면서 모두 외지로 나가고 동네에는 시집간 누나만 살고 있어, 김복동 옹은 부모님 제사를 모실 때는 춘천에 있는 큰형님 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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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에서 왕주물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왕주물」은 대부북동의 종현마을에서 가장 큰 우물에 얽힌 유래담이다. 현재 우물의 모습은 흔적도 없으며, 그 귀신 이야기만이 전승되고 있다. 1996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 종현마을에서 이정태가 채록하였는데, 이는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안산시사』 중권에 실려 있다. 안산시 단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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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시내에서 대부도로 전화를 하려면 전화번호 앞에 반드시 인천 지역번호인 032번호를 붙여야 한다. 1994년 주민투표로 안산시에 편입되기 전에는 인천과 더 가까웠다는 것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리적으로 가까운 시흥시와 화성시, 아니면 그전에 생활 근거지가 되었던 인천광역시를 젖혀 두고 어떻게 대부도는 안산시 단원구의 행정구역으로 편입될 것일까?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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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 마을의 행정명은 대부북동 8통으로 6개의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종현 마을의 ‘이장’과 그 밑에 있는 ‘반장’은 마을의 행정적인 일, 작목반 운영, 기타 마을 일을 맡아서 한다. 이장[통장]의 경우 영농조합대표와 팜스테이대표 등을 겸임하고 있으며, 반장은 통장을 도와서 마을 일을 본다. 이장과 반장 등의 통반 조직 외에 종현 마을에는 다양한 조직들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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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방조제가 완공되면서 육지가 된 대부도 종현 마을 사람들의 생활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육지가 되기 전 종현 마을 사람들의 삶은 섬 사람 모습 그대로였다. 종현 마을에서는 1960년대 말부터 굴과 바지락 양식을 시작했는데 그 이전에는 농사와 연안어업에 종사했다. 어업은 배를 타고 나가는 어업과 얕은 바다에 그물을 치는 어살 등으로 나뉘는데, 종현 마을은 배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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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도에는 조선시대 이괄(李适)의 난을 피해 도망가다 대부도에 잠시 들렀다고 전해지는 인조(仁祖) 임금과 관련한 설화가 많다. 이런 이야기들이 적힌 문헌은 발견되지 않아 역사적인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좀 더 정확한 연구가 필요하지만, 만약 이것이 사실이었다면 서울과 떨어진, 게다가 육지도 아닌 외딴 섬에 왕이 들렀다는 것은 당시 섬마을 사람들에게 전무후무한 사건이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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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 마을은 시화방조제를 지나 대부도에서 약 2㎞쯤 동쪽 방향으로 가다가 영흥화력발전소 길로 접어들면서부터 시작된다. 법정동은 대부북동이며 행정동은 대부동이다. 종현 마을은 대부도의 중심에 위치한 곳으로 주민 대부분이 반농반어의 생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농어촌 지역이다. 예전에는 종현마을을 북을 두드린다는 의미의 ‘북두리’라고도 불렀다. 마을의 형상을 보면 마을 뒷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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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강국이지만 정작 기반 시설은 도시 위주로 구축돼 있어 도시와 농어촌 간의 정보 격차가 문제로 지적돼 왔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 2001년부터 농어촌 지역에 정보화마을을 선정하고, 컴퓨터와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보화마을 추진 첫 해에는 9%도 채 안 되던 농어촌 지역 인터넷 이용률이 점차 증가해 작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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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방조제를 지나 대부도에 들어서서 구봉도유원지를 가리키는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곳곳에 더 이상 소금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폐염전들을 만나게 된다. 종현마을에서 가장 큰 염전이었던 구봉염전 역시 일부는 낚시꾼들이 손맛을 보는 유료 낚시터로 바뀌었고, 일부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갯고랑이 되었다. 그 옆에는 바닷바람 맞은 갈대가 쉼없이 일렁거린다. 한때는 대부도에만 민...